정복은 계속된다 - 노암 촘스키

이렇게 제목에다 저자 이름 '노암 촘스키'를 꼭 써줘야 한다. 어마어마한 석학의 책을, 그것도 장장 425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내가 읽어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칭찬하기 위해서. 책 내용의 이해 여부를 막론하고 단지 그의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 자신을 칭찬할 자격이 충분하다. 물론 이 책은 노암 촘스키의 전공인 언어학에 대한 책이 아니다. 언어학 관련 책이었다면 아마 너무 어려워서 손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노암 촘스키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지만 또한 뛰어난 정치 비평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지난 500년 동안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정복해 왔는지, 그 정복의 역사를 다룬 노암 촘스키의 정치 비평서이다.

미국의 역사를 다룬 정치 비평서라지만 역사 지식이 전무한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다. 처음 책을 펼치고 나서 두세 장쯤 읽었을 때 당연하게도 졸음이 왔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해 책을 덮고 책꽂이에 꽂은 뒤 이부자리를 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다시 몇 번 시도를 해봤으나 역시나 결과는 같았다. 이 책 말고도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이 많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이 책과 멀어지게 됐다. 이 밉상스런 책은 처음 부분에 책갈피를 티나게 꽂은 채로 책꽂이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종종 이 책과 눈을 마주쳐야 했다. 책의 처음 부분에 꽂힌 책갈피의 애처로운 표정을 외면하면서도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정복 역사를 다룬 책이니 만큼 미국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알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마침 집에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고 그중 미국인 편과 미국 역사 편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읽었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이렇게 책 세 권의 도움으로 나는 이 [정복은 계속된다]라는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미국의 개괄적인 역사를 습득했고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제3세계 지역을 착취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책과 책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난 500년 동안 주위의 국가들을 어떻게 정복 및 착취해 왔는지를 세세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두꺼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실례로 뒤덮여 있다. 세세한 역사적 사실과 뉴스 기사를 포함하는 수많은 참고자료들은 대체 이 많은 것들을 언제 다 읽어 봤을까 하는 의문으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수많은 실례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벌거벗은 본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그 진실의 고갱이는 이렇다.

"여기서 우리는 확실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국 정책의 최우선순위는 바로 이윤과 권력이다. 그럴듯한 겉모습 수준을 넘어선 진정한 민주주의는 극복돼야 할 위협일 뿐이다. 인권은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가치를 지니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는 '24' 이다. 첫 편을 보고 나면 그 시즌의 마지막 편을 끝마칠 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매우 강한 드라마이다. 시즌6까지 빠짐없이 챙겨본 나는 시즌7 또한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드디어 올해 기다리던 시즌7이 시작했다. 한 번 보게되면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에 애타는 마음으로 시즌7의 모든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을 때 나는 시즌7 첫 편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고대하던 시즌7이었건만 나는 에피소드 도중 멈춤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내전이 벌어졌고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미국 대통령은 파병을 결정한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항공 모함을 중지시키기 위해 미국 내에 테러가 시도되지만 미국은 자국의 안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숭고한 결정을 고수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그 숭고한 가치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열변을 토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만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정지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에 불과한 것일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을 편하게 살아내기가 힘들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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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spymd | 2009/11/04 00:30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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