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높이를 보여주는 노동법

요즘같이 새벽 3, 4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곤 한다. 집에 도착해서 씻자마자 자리에 눕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해야하는 난감한 시츄에이션. 이보세요들, 저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예요. 허공에 대고 나지막히 항변해 보지만 메아리는 결코 돌아오는 법이 없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거리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간다. 거리를 걸으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속의 나사처럼 내 몸이 닳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을씨년스런 가을이다. 그래도 나는 야근비나 특근비라도 받으면서 일하지만 세상엔 야근비와 특근비를 꿈도 꾸지 못하며 무참히 닳아가는 노동자들로 넘쳐난다. 어제는 하늘이 어두워지며 줄곧 비가 내렸다.

음산한 비가 종일 내렸던 어제, 검은 토요일처럼 이 책의 표지도 검구나. "인권의 높이를 보여주는 노동법". 170 페이지가 넘지 않는 이 얇고 작은 책은 노동법과 그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들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읽고 나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하나가 '노동권'에 에 대한 것이다.

헌법 제3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이 조항에 담겨있는 권리가 '노동권' 이라고 하는 것인데, 세상에 노동이 권리라니. 이것 참 흥미롭지 않은가. 여지껏 노동을 해야하는 건 의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노동이 권리란다. 한마디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책은, 일할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에게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국가가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왜 여태 모르고 살아온 걸까. 

지난 9월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이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한다는 망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창피하지만 그 기사를 읽던 당시에는 노동3권이 무엇인지 몰랐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참에 다시 정리하고 넘어가자.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여기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이 세 가지가 바로 '노동3권'이다.

"첫째, '단결권'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둘째, '단체교섭권'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개별적 교섭 대신에 노동조합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셋째, '단체행동권'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하는 등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게임을 하려면 최소한 공정한 규칙(rule) 위에서 대등한 조건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권투로 비유하자면 홍코너 노동자 선수의 헤드기어를 벗기고 두 손을 꽁꽁 묶은 다음 링 위에 올려보내자고 하는 것인데, 그 경기의 결과가 어떨지 생각만 해도 참담하다.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주장을 노동연구원장이란 작자가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서점에서 근로기준법에 관한 책을 샀다. 온통 한문으로 가득해 대학생들조차 읽기 어려워 한다며 만류하던 서점 주인. 전태일은 옥편을 뒤적여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지만  중학교 과정을 채 마지지 못한 그에게 한문으로 가득한 그 책을 읽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다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 옥편을 들여다 보고 있었을 그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이미지 출처: 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90492688_1.jpg
 

by cuspymd | 2009/11/02 00:17 |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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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11/02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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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uspymd at 2009/11/04 00:31
맞아요~IT 업계. 나스타님은 역시 모르는게 없으시네요. 근데 왜 맨날 우울해할까요. 너무너무 아는게 많아서 그런가. 음... 똑똑이는 똑똑인데 헛똑똑이예요~ㅋㅋ

죽었을까봐 걱정했나요?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저 이렇게 숨 잘 쉬고 있어요~!!ㅋㅋㅋ
Commented at 2009/11/04 00: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uspymd at 2009/11/04 00:31
저 바보 맞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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