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책 제목 참 길기도 하다. 제목은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부제는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이 책은 시베리아 억류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근데, 시베리아 억류자가 뭐냐고? 나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 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 만큼 더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일테다.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국의 대반격으로 전황이 불리해진 일제는 1943년 조선에 징병제를 도입했다. 이 징병제로 인해 1944년과 1945년에 만 20세가 되는 청년들이 총알받이로 동원되어 일제가 마구 벌려놓은 광할한 전쟁 지역에 배치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1945년 8월15일 일제는 항복했다. 살아남은 조선 청년들은 아마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지긋지긋하던 전쟁이 끝나 버리다니. 영원히 지속될 것같은 일제의 지배가 끝나 버린 것이었다. 청년들은 꿈에 그리던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을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1945년 8월 9일, 대일전에 뛰어든 소련은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 60여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포로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포로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이송하라는 극비 지령을 내렸다. 이것이 바로 '시베리아 억류' 사건이다.

문제는 일본군에 끼여있는 조선 청년들이었다. 일제에의해 끌려와 사지에서 싸운 것만도 억울한데 이제는 포로로 억류되어 강제 노동까지 해야했던 것이다. 이들은 혹한의 시베리아 등지에서 중노동을 하고 3, 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이라고 조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련 화물선을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북한의 흥남항이었다. 만주나 북한이 연고지인 사람들은 가족을 찾아 떠났고, 남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한밤 중에 38선을 넘었다.

죽을 고생을 하고 드디어 도착한 남한땅.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따듯한 환영행사가 아니었다. 38선 경비 부대의 발포와 대공 수사기관의 엄격한 신문.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서도 오랜 기간 감시를 받았다. 1990년 6월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맺기 전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기막힌 처지를 호소하거나 공개적으로 보상을 요구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앳된 스무살의 청년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아니, 이제는 살아계신 분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겨레 기자 김효순은 자료조사와 이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그 무참했던 삶의 궤적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참으로 기구한 삶이지 않은가. 단지 운이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국가의 거대한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국가의 안녕을 위해 이 사람들의 불행한 삶은 잊혀져야만 한다. 그들의 불행한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기억하지 않는한 앞으로 국가 폭력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그들처럼 불행한 삶을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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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spymd | 2009/10/13 23:44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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