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추억 - 나를 웃긴 세 노인

짧은 연휴라 금방 지나가 버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되돌아 볼 추억은 있기 마련이다. 추석 전날, 그러니까 금요일이었던가. 나를 웃긴 두 노인이 생각난다.

차례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간 이마트. 역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 댔다. 어머니는 필요한 것들을 적은 종이를 들여다 보며 이것저것 물건을 골랐고 나는 평소와 다름 없이 카트를 끌며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치킨을 파는 곳을 지나면서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먹을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나.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문득 어머니가 멈춘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삶은 닭. 그거 맛이 없어 안 먹지 않느냐며 차라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걸 올리자 신다. 훈제 바베큐 치킨을 고르시는 어머니. 차례상에 치킨이라니, 그 생경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게 다니던 중 동태전과 꼬치 등 차례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에 닿게 되었다. 찾는 사람이 많은지 음식은 이미 동이 나버렸고 판매대 옆 아주머니는 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셨다. 고개를 빼고 주방 안을 들여다 보니 사람들이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게 보였다. 지난하게 꼬치를 끼우고 밀가루를 묻혀 부치던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한편으론 좀 정성이 부족한 건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우리네가 음식을 먹을 때 돈을 주고 사먹는다고 해서 실망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외려 사먹는 걸 좋아하는게 우리네 습성아닌가. 조상님들도 돈주고 샀다고 뭐라 하시지는 않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거 같다.

마침내 음식이 나왔다. 동태전과 꼬치와 동그랑땡. 꼬치의 재료는 맛살과 햄, 파 그리고 단무지였는데 만드는 틀이 따로 있는지 다들 크기가 같았고 또 반듯했다.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맛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예전에 몇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어쩜 그리 맛이 없는지 일부러 맛없게 만들려고 연구를 한건 아닌가 했다. 어디서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음식이 나오자마자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 한 노인. 고집스런 얼굴 표정과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품이 참 답이 없어 보였다. 음식 담는 접시를 집어든 그 노인은 판매원에게 소리친다. 꼬치 스무개 담아주소.

열심히 퍼담는 판매원. 꼬치를 한참 쳐다보던 노인이 문득 판매원에게 소리친다. 무슨 꼬치에 돼지고기가 안 들어가나. 둥글둥글 살이 찐 판매원 아저씨는 당황해하며 대답한다. 햄....햄이 들어 가는데요. 노인은 다시 소리친다. 전에는 돼지고기로 만들었는데 왜 바꿨어? 판매원 아저씨의 대답이 점점 작아진다. 예전부터 햄으로 만들었는데요. 어이없는 표정의 판매원 아저씨.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면 그만인 것을. 노인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꼬치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마치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꼬치는 꼬치가 아닌 것처럼. 대체 노인의 저 완고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나는 노인을 보며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가치관이나 주관이란 것이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은 편견 또는 아집의 다른 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더랬다. 

세번째 노인은 나의 늙은 아버지. 명절때면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가곤 한다. 나란히 앉아 말없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부자. 그렇게 씻던 중에 아버지는 가방에서 플라스틱 통 두개를 꺼낸다. 하나는 샴푸. 나머지 하나는 뭐지? 나는 유심히 들여다 본다. '바세린'. 그 아래는 'MEN' 이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바디 로션이라고 적혀있다. 아, 바디 로션.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나. 하지만 문득 치솓는 의문. 엥? 바디로션을 지금? 의문을 뒤로 한채 옆에 있던 샴푸로 머리를 감고 본다.

이윽고 아버지는 바디로션을 손으로 가리키며 나보고 사용하라는 듯 고개짓을 하신다. 어이 없는 표정으로 내가 소리친다. 이거 로션이예요. 평소에도 보청기를 껴야 간신히 소리를 듣는 아버지. 추레하게 벗은 몸으로 물을 뒤집어쓴 이 늙은 노인에게 내 외침이 가 닿을리 없다. 아버지는 바디로션을 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MEN' 이라고 써있잖아. 그리고 여기 '바세린'. 아버지는 바세린을 무엇으로 이해하셨길래. 나는 다시 소리친다. 이거 로션이예요. 다 닦은 다음에 바르는 거예요. 이제사 이해한 듯한 아버지.

아버지와 나는 목욕을 마치고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비로소 바디로션을 발랐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어린 내게 로션 바르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어른이 된 나는 늙은 아버지에게 바디 로션 바르는 법을 다시금 가르친다.

 

by cuspymd | 2009/10/07 01:13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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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10/07 17:05
듣고 있는 음악 때문에, 목욕탕 이야기에서 기분이 가라 앉네요 ^^.

저도 오타작렬 포스팅을 하지만(웃음) 가르치다-는 무엇을 알려주다구요. 아버님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찍으실 때는 가리키다- 다가 맞아요오오-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어요. 그 여자가 새가 날아간 방향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덧글 달면서, -_-..)

추석은 잘 보내신 거 같으시네요- 이번 추석은 저희는 제사를 하지 않아서, 전 요리를 먹지 못했어요. 동태나, 녹두 전을 할까 했는데, 집 안에서 냄새가 진동하는 게 너무 싫어서- 갈비찜만 해 먹었답니다.

날이 추워져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
Commented by cuspymd at 2009/10/07 19:05
'가르키다' 라는 말이 잘못된 말이었군요~. 좋은 거 배우네요~ㅋㅋㅋ.
'가리키다', '가리키다'... 그랬군요~.

맞춤법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여기서 띄워야 하는지 아니면 여기서는 붙여야하는지 매번 알쏭달쏭 하다니까요.

나스타님도 따듯하게 입고 다니세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10/08 01:31
보시다 틀린 데 있음 거침없이 지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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