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즐거운 네버랜드의 축제날

며칠 전 EBS의 음악 공연 프로인 '스페이스 공감' E554 를 보았다. 이 프로 꽤나 신기하지 않나? '스페이스 공감'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 프로를 보고 있으면 내 삶이 한 뼘 정도 고상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수준보다 또 한 뼘 정도 격상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이 프로가 좋다. 조그마한 무대 위에 차분한 조명, 다소곳이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들, 그리고 정말 예술가 같은 가수와 밴드. 이 무대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그네들은 더욱 진지해 보이고 열정이 넘쳐 보인다. 목소리는 감미롭고 진솔하게 들린다. 때로는 너무 차분해서 하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프로에는 이 프로만의 아우라가 있고 그 아우라가 가수와 관객은 물론 나의 삶까지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E554 에 나온 팀은 '엘리스 인 네버랜드'. 처음 듣는데도 그네들의 음악은 해맑고 즐거우며 상쾌하고 경쾌하다. 무릎 위에서 통통 튀는 것만 같다. 그래, 마냥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면 꼭 이 음악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통통 튀고 즐겁고 경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거 아닐까.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경쾌한 기타 소리가 그 옆에 나란히. 변덕스런 피아노 소리는 어느 틈에 삐진걸까 뾰루퉁한 표정으로 두어 걸음 뒤쳐져 따라온다. 개구쟁이 드럼은 오늘도 신나서 천방지축 뛰어 다니고 무뚝뚝한 베이스는 오늘은 왠일인지 모두를 따듯하게 다독인다. 개성이 강한 그들은 사이좋게 놀다가도 금방 싸우고 토라지곤 하지만 신기한 건 그렇게 티격대격 싸우고 울고 웃으면서도 모두들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바로 네버랜드. 그리고 오늘은 네버랜드의 즐거운 축제날. 

세상에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웃고 울고 즐겁고 슬퍼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낮과 밤, 아침과 점심. 어제는 비가 오고 오늘은 해가 뜨고.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언젠가 눈이 오겠지. 눈이 오면 슬퍼하는 트럭 운전사와 눈이 오면 좋아서 방방 뛰는 트럭 운전사의 철없는 아들. 그리고 이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잠수부가 있다. 보통, 꿈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머리 위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곤 하지만 잠수부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칠흑색 바다를 내려다 보곤 했다. 왜 바다가 칠흑색이냐고? 그야 잠수부가 꿈을 이야기하던 때가 칠흑 같이 어두운 가을 밤이었기 때문이다. 꼭 오늘 같이 캄캄한 가을 밤이면 잠수부는 깊은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하염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새벽 동이 터올 무렵이면 그가 바다 가장 깊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어느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신세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했다. 그곳은 바로 네버랜드. 그리고 오늘은 네버랜드의 즐거운 축제날.

'잠수부의 운명'은 엘리스 인 네버랜드'의 두번째 앨범 [Festa in neverland]의 10번째 곡이다. 마침 스피커에서 운명처럼 이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다. 가을 밤 하늘이 유난히 칠흑빛 바다처럼 검게 반짝인다. 거기 한 가운데 검은 파도 사이로 잠수부의 부표가 별처럼 홀로 반짝인다. 잠수부가 내쉰 공기방울들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바다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다. 더 깊이, 더 깊이. 잠수부가 어서 깊은 바닷 속 네버랜드에 가 닿을 수 있기를. 오늘은 네버랜드의 즐거운 축제날. 잠수부가 어서 네버랜드의 즐거운 축제에 나를 초대해 주기를 바라며 하염없이 중얼거려 본다. 더 깊이, 더 깊이...  

by cuspymd | 2009/09/25 01:36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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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일단 서 at 2009/09/25 09:29
가요가 우리 삶에 청량제 같은 역활을 한다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노래도 있기 마련인데, 엘리스 인 네버랜드가 그런가 보네요. 가요속에 빠져들기 보다는 가끔씩 내 삶을 상쾌하게 해주는 노래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25 17:32
일단 서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25 14:10
소박한 민들레 같은 공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스피 님은 고급스럽다고 하시네요. 전, 다시보기로 장윤주,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앤 요조, W 편을 가끔 봐요. 좋아하는 곡으로 스크롤 당겨서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25 17:35
소박한 민들레 같아서 고급스럽다' 라고 한다면
좀 이상한 가요?ㅋㅋㅋ

저는 제 방의 공기가 너무 건조하거나 무료할 때
손이 가더라구요.
Commented by 일단 서 at 2009/09/26 21:29
빠른 음악의 가요도 좋아하지만, 요즘 가요는 하나같이 클럽에서만 쓰이는 노래라는 느낌이 별로더라고요. 90-2000년대 가요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가사가 없는 경음악이나 클래식도 좋아하네요. 그래봤자 많이 알려진 대중적인 것들이지만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27 00:43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곡이 있는데요. 이 노래는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는데요. 관객이 웅성대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도 음악이라는 거죠. 참으로 혁명적인 시도이긴 하지만 저는 이 노래를 떠올릴 때마다 '아, 그 4분 33초 라는 시간동안 관객은 얼마나 지루했을까' 라는 상상을 하면서 속으로 키득키득 웃곤해요.
Commented at 2009/09/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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