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저공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키웠다고 한다. 원숭이를 무척이나 좋아한 저공은 무리를 이룰 만큼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공의 집안 사정이 나빠져 원숭이에게 주는 먹이를 줄여야만 했다. 한참을 고심하던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가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앞으로 먹이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도록 하마. 이를 들은 원숭이들은 물론 불같이 화를 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몸을 미친듯이 흔드는 녀석,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녀석,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녀석. 이처럼 화내는 방식도 가지각색. 다시 저공은 짐짓 양보하는 척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도록 하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엎드려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원숭이를 좋아했던 저공은 원숭이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꾀를 부렸던 것이지만 지금 이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는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회롱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만약 저공이 안다면 무덤 속에서 통곡을 할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저공의 억울함을 말하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이 얘기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바로 원숭이의 단순함이다. 결국엔 일곱 개로 같은데 지금 당장 네 개를 준다는 말에 혹하는 멍청한 원숭이들.    

하지만 원숭이들이 실제로도 이 저공의 고사에서와 같이 멍청하고 단순할까? 인터넷에서 자주 본 동물원 동영상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 앞. 한 어린애가 철망 앞에 바짝 다가가 먹을 것을 내민다. 얼굴엔 심술보가 가득한 이 어린애. 척 보기에도 지독한 장난꾸러기처럼 생겼다. 먹을 것을 받기 위해 원숭이가 손을 내밀면 어린애는 재빨리 손을 빼고, 닿을락 말락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어린애는 원숭이를 놀려 먹는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의 어린애.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는 찰나, 화가 난 원숭이가 철망 사이로 팔을 길게 쭉 뻗어 웃고 있는 어린애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어따 속 시원한 거. 어린애가 그닥 다치지 않았다면 십년 묵은 채증이 쑤욱 내려가는 걸 느끼며 원숭이의 영특함을 칭찬하게 된다. 오해는 마시라. 어린애는 참말 지독한 장난꾸러기였으니 말이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원숭이가 실제로는 영특한 동물인데도 이 책은 남우세스럽게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만약 원숭이가 안다면 화가 난 원숭이가 철망 사이로 빨을 길게 쭉 뻗어 저자의 머리통을 후려갈기지 않을까. 좀더 얌전한 녀석들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몸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릴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은 영특한 원숭이들의 화를 돋구겠지만, 책의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원숭이도 이해할 만큼 쉬운게 사실이다. 쉽다는 것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이란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엄청난 분량에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책이라 상상해 본다. 아주 오래 전 마르크스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마르크스가 글을 쓰면 엥겔스가 그 글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쓰곤 했는데 가끔 혹은 자주 마르크스가 쓴 글의 핵심이 무엇인지 엥겔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일화가 얼핏 기억난다. 이 책이 제목부터 쉽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실제 '자본론'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방증하는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은 표지에서 사람들이 자본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지적한다. 이 책의 표지는 자본론은 사회주의를 말하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론]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자본론이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표지는 자본론이 자본주의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그 현실을 분석하고 있으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관심이 없어서 자본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까지 한다. 가벼운 제목 답지 않게 표지부터 꽤 도발적이지 않은가. 나 역시 자본론은 사회주의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 이 책에는 사회주의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 책의 저자 '임승수'는 꽤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있다. 이 책의 표지를 고대로 믿은 어느 자본주의 신봉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위의 원숭이처럼 방방 뛰며 화를 내지 않았을까.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그래도 결론은 사회주의이다. 자본주의의 여러 폐해와 결함들의 근본 원인이 자본의 자기 증식이라는 자본주의의 원리 자체에 들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결코 개선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책의 결론은 사회주의가 될 수 밖에 없다.

원숭이를 어르려 꾀를 냈던 저공처럼 이 책의 저자 또한 꾀를 내어 자본주의를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들게 한다. 그리고는 이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본주의를 코너로 몰아 원투 펀치를 날린다. 그로기 상태가 될 때까지 사정없이. 이윽고 다가오는 결정적 순간, 비척대는 자본주의에게 저자는 '사회주의'라는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원, 투, 쓰리...

자본주의를 알고 싶어 이 책을 든 사람이 자본주의가 들것에 실려나간 쓸쓸한 링 위에서 홀로 사회주의를 마주했을 때, 이 사람은 자리에서 방방 뜨며 화를 내게 될까 아니면 자리에 엎드려 기뻐하게 될까.  



이미지 출처: 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59401331_1.jpg

by cuspymd | 2009/09/22 01:36 |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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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피티라메 at 2009/09/22 19:24
저자의 각종게시판에서의 책소개글을 볼 수 있던 책이었죠^^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22 21:58
그랬군요~.
게임 정보 사이트인 '루리웹'게시판에도 이 책의 소개글이 올라왔던 적이 있는데요. 자본론이 아직도 유효하네 마네, 논쟁이 뜨거웠던 걸로 기억해요~ㅋㅋ.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23 02:18
-ism은 개개인의 공통된 생활방식이 포화상태가 되어서 발생하는, 태풍 같지 않나요. 자본주의도 그러리라 생각해요. 어릴 때,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용돈을 받잖아요, 나이가 많으니 돈 더 줄게, 넌 아직 어리잖아, 그러니까 이거 만 줄게, 하는 식으로 돈의 액수가 차이가 나는데, 저는 그때마다, 나이가 적든말든 돈을 쓰는 데에는 사람을 가리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대학생들이랑 똑같이 돈을 받아내었어요. 이런 사례도 자본주의의 한 형태가 아닐까요. 타인에게 뒤쳐지지 않는 이윤을 얻기 위한, 변호(웃음).

커스피엠디님을 처음 알 게 된 게, 김탁환 천년습작에 의해서였는데, 지금 읽고 있어요. ^^ 블로그 이상한가요. 고생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건데 말이죠. 된장년 콘셉트는 안 나오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말이죠(따가운 뒤끝).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24 14:29
된장녀라뇨. 저는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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