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똑똑하게 읽자

"신문을 똑똑하게 읽자." 무슨 말일까? 기사의 요지를 잘 파악해야한다는 뜻인가?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한다는 뜻인가? 하루치 신문에는 많은 분량의 기사가 있으니 빠르게 한 번만 훑어봐도 무엇에 관한 기사인지를 잘 파악해야한다는 뜻인가? 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똑똑하게 읽는다는 것은 그런걸 의미하는게 아니다. 신문이 우리에게 마법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 교묘히 우리에게 마법을 걸고 있다. "아브라카타브라~ 아브라카타브라~"

거참, 인터넷 신문을 종일 끼고 사는 나지만 신문이 내게 마법을 걸고 있는걸 여태 몰랐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다. 신문 기사는 항상 사실만 말하는줄 알았다. '그럼 신문이 거짓을 말한다고?' 라며 의아해하시는 분들 많을 것이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에이 그런 얘기였어?'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분들은 이렇게 말을 이을 것이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이 어디 있냐. 그 사실을 보는 시선이 있을 뿐이고, 그 시선에 따라 각자 사실을 해석하는 거지. 다들 그러잖아.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야. 너 꽤 순진한 녀석이구나.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실이라니 터무니 없지. 구로사와 아끼라의 '라쇼몽'이란 영화를 봐봐.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모두 딴 얘기를 하고 있다고. 모두들 자기 자신에 유리하게 말이지.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고 불리한 건 덜어내 버리는거야. 각자가 보고 기억하는 사실이란 이렇게 불완전한 것들 뿐이지."

물론, 나도 안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신문 기사라는 것도 기자의 시선을 거쳐 해석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쉽게 깨닫지 못하는 신문의 마법. 이것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문의 '표제'가 가지는 중요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표제'가 뭐냐고? 기사의 제목 말이다.

손석춘이 쓴 [신문 읽기의 혁명]에서는 '표제'는 제목과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구분 짓는다. 그래서 신문에는 제목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표제'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사의 '표제'가 단순히 기사의 요약이나 핵심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제'에는 제목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판단' 이란 것이다. '표제'에는 편집자의 적극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바로 이 가치 판단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법을 부려서, 독자들이 '표제'대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기사의 '표제'를 그 기사를 직접 취재한 기사가 쓸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다. 기사를 쓴 사람이 표제도 짓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문사의 내부 구조를 보면 취재부와 편집부가 나뉘어져 있다. 취재부에 속한 취재 기자가 그 날의 기사를 신문사에 통고하면 편집부는 그 기사를 검토하고, 혹 필요하면 편집도 하며 그 기사의 '표제'를 정하고 그 기사를 신문의 어느 지면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재밌는 사실은 기사의 실제 내용이 그 기사의 '표제'를 정하는 데 있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이 사건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다. 무엇을 말함으로써 신문의 독자들이 무엇을 보게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독자들은 '표제'가 말하는 것만을 기사에 읽게 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기사를 챙겨읽는 부지런한 독자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기사의 '표제'만을 읽고 넘어간다. 이때 '표제'는 오롯이 독자들에게 흡수되어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 읽기의 혁명]은 이러한 신문의 가치 판단이 '표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편집, 그러니까 여러 기사들 중 어떤 기사를 1면에 실을 것인지, 어떤 기사의 '표제'를 다른 기사의 '표제'보다 크게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판단이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곳이 신문의 '사설' 이라고 말한다. 하여 '사설'을 읽은 다음에 신문의 1면 기사의 배치를 보면 그 신문이 말하는 바,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있다고 말한다.

신문의 가치 판단과 확실한 거리를 유지하며 신문이 우리에게 교묘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는 신문을 똑똑히 읽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image.libro.co.kr/book_img/4998/0a0000164436_00.jpg
 

by cuspymd | 2009/09/16 00:59 |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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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16 06:52
한 줄 읽고, 시비 걸고, 한 줄 읽고 시비 걸고, 언어영역 비문학 공부할 때 썼던 방법인데, 효과 만점이었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는 각 신문사 사설이나, 주요 기사를 읽으면서 노트에다가 시비걸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그 신문사들의 성향이 드러나었어요. 여당이던 야당이던 중립이던 간에, 신문에서 진실을 찾기란 힘이 든 거 같아요. tv뉴스가 그나마 진실적인 거 같지만 사건사고를 다루는 비중에서 은폐와 확대가 드러나는 거 같구요. 오랜만에 포스팅하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글에 제가 덧글을 달지 않아 그랬나봐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16 17:39
언제까지 안 다나 두고 보자고 그랬는데.
영원히 안 달거 같아서,
포기했네요. 독해 독해~.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16 19:54
-_-;;;;;
Commented by 피티라메 at 2009/09/16 16:13
햐..이책 10년넘은 책인데 개정판을 냈군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16 17:40
10년 전에 읽으셨던 거군요?!ㅋㅋ
지금 읽어도 정신이 번쩍 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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