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정글에 어서 오세요.

"행복한 정글에 어서 오세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행복을 꿈꾸며 향하는 정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사랑과 꿈, 돈과 성공이 함께하는 행복한 정글에 어서 오세요."

리투아니아의 촌뜨기 유르기스는 머리에 든 건 없지만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여태껏 어느 누구에게도 힘으로 지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불한당이나 건달은 아니다. 그는 무척 부지런하고 훌륭한 농사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랑에 빠진다. 시골 장터에 나갔다 우연히 어린 소녀 오나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하늘에 내려온 것만 같은 작은 천사 오나. 그는 오나의 집에 달려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오나와 결혼시켜 달라고 간청한다. 그녀의 가족이 가진 것도 별로 없어 보이는 이 무식한 유르기스에게 자기의 소중한 딸을 그렇게 덥석 내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집안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끈질긴 유르기스의 노력으로 둘은 미래의 결혼약속을 받아냈고 그 둘은 서로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게 되고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을 원하게 되기 마련이다. 유르기스와 오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과 행복을 바랐다. 때마침 저 바다 건너 먼 나라 아메리카에서는 거지도 부자도 모두 행복하게 살며 가난한 사람도 일만 하면 높은 돈을 받는다는 소문이 거리마다 파다하다. 며칠 간의 심사숙고와 토론을 거쳐 마침내 유르기스와 오나,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아메리카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드디어 그들은 행복과 성공의 부푼 꿈을 안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향한다. 길고 지루한 여행 끝에 그들은 마침내 시카고의 식육 공장 지대에 도착하게 된다.

심장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진 이 두 연인과 그의 가족들이 새롭고 낯선 아메라카라는 땅에 잘 정착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진정 바랄 것이다. 물론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겠지만 그래서 울고 상처받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가족이라는 따듯한 유대의 끈으로 서로 뭉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기반을 닦고 자신들의 삶을 당당히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이다. 얼마나 감동적일지 생각해 보라. 분명 감정이 풍부한 몇몇은 눈물까지 훔치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 소설책,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가 1906년에 쓴 [정글]은 우리의 기대를 무참히 조각낸다. 장장 588쪽에 달하는 이 두껍디 두꺼운 책 안에서 변변한 희망 하나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예상했던 것 처럼 책에는 많은 시련과 고난이 나온다. 무참하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시련과 고난이 저 불쌍한 가족들을 끝없이 괴롭힌다. 세상에 지옥이라는게 존재한다면 지옥은 꼭 이런 모습일거라고, 지옥에서 사는 사람들은 꼭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 불쌍한 가족은 이 두꺼운 분량의 소설 내내 마소처럼 끝없이 일하고 끝없이 굶주리며 시름시름 죽어간다. 이들의 무참한 삶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것 밖에 없다.

불쌍한 유르기스. 시카고의 식육 공장 지대에 도착한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겠어." 거리는 언제나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그는 덩치가 크고 힘이 셌다. 그는 현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고 누구보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대대로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첫날 바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받는 돈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후 그들 가족에게 많은 시련이 닥치지만 그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되뇌이곤 했다. "좀더 열심히 일하겠어."

식육 공장의 기계는 최대의 효율을 위해 가장 빠른 속도로 맞춰진 것이었다. 공장의 일꾼들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만 했다. 하지만 결코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출 수는 없었다. 일꾼들은 결코 오래 버틸 수 없었고 빈 자리는 새로운 일꾼으로 대체되었다. 유르기스는 남들보다 빠르고 힘이 셌기 때문에 쉴새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속도에도 맞출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니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일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기계 속의 부품처럼 그 자신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마모되고 있다는 것을. 사고는 느닺없이 찾아왔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그들 삶의 균형도 순식간에 깨어졌다. 그는 점점 병들고 야위어 갔다. 그는 결국 고장난 부품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전전했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불쌍한 오나와 그의 가족. 유르기스의 벌이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 일을 해야했다. 처음엔 유르기스가 반대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작고 여린 오나도 공장에 나가야만 했다. 애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모두가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그날 저녁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점점 지쳐갔고 점점 가난해졌다. 모두가 하루종일 일했는데도 조금씩 다가오는 파국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불쌍한 가족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들은 하루도 쉬지않고 죽도록 일했는데도 비참한 삶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했다. 이 책의 마지막은 모든 것을 잃은 유르기스가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뜨며 끝을 맺고 있지만 21세기의 현실을 아는 나에게는 큰 위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소설의 첫 부분. 시카고의 식육 공장 지대에 막 도착 이들 가족은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을 견학하게 된다.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한 광경에 그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렇게 속삭인다. "끔찍해라, 내가 돼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들의 생각 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이었다.
 

p.s 문화웹진 '나비'에 [정글]의 서평이 실렸다.
전문적이면서도 재밌는 글로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문화 웹진 나비에 실린 '정글' 서평]

그림 출처: http://jin.booksetong.com/images_book/book_370000/book_370987_l.jpg

by cuspymd | 2009/09/10 02:32 |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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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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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17 22:26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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