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만장한 자본주의씨의 일대기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세계사에서 중세의 유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은 하루종일 날씨가 우중충했다. 아침엔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안개가 개인 후에도 하늘이 내내 흐렸다. 잔뜩 낀 구름 너머로 해가 정말 떠 있기나 한건지 의심스러웠던 스산한 하루. 중세 시대 유럽의 날씨도 꼭 이랬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중세라 칭하는 천년 간의 길고 긴 시기 내내 이런 날씨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을 것만 같다. 내가 배웠던 세계사에선 중세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다. 르네상스라는 광명을 위해 존재하는 천년 간의 긴 암흑기. 인류는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비로소 르네상스라는 여명을 맞이했고 근대라는 찬란한 빛의 시대를 향해 달려왔다는 것. 이것이 내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세계사의 고갱이다.

미국의 진보 지식인이었던 '리오 휴버먼(1903~1968)'이 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중세의 유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런 변화 없이 천년 내내 흐린 날만 계속되었을 것 같은 그 시기에도 변화의 기미는 조금씩 조금씩 나타났다. 천년 간 굳건했던 봉건제에 미묘한 균열의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농사만 짓던 시대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거래란 걸 하기 시작했고 상거래는 조금씩 조금씩 증가했다. 하지만 단지 미약한 변화일 뿐이었다. 휴버먼은 왜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걸까. 그때까지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이 지금 자본주의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교양 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한 적이 있지 않을까. 똘망똘망한 눈으로 대학 교정을 걷던 나 역시 교양 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한 적이 있다. 이 불안하고 험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돈을 잘 벌기 위해서도 경제학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생산과 소비가 만나고 효용이 한계와 만나는 등 수업시간 내내 칠판에 그려진 그래프를 공책에 따라 그리던 생각이 난다. 무슨 놈의 그래프가 그리도 많았는지. 두꺼운 교재에는 경제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례도 많이 실려있었지만 그것에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외울게 더 늘었다는 시험과 평가에 대한 부담감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는 그래프가 나오지 않는다. 경제학 교재처럼 경제 이론에서 시작해서 실례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물론 그 역도 아니다. 단지 중세 시대부터 대공황과 파시즘이 등장한 1930년대까지(이 책은 1936년에 씌어졌다), 농노제에서 자본주의로 경제가 어떻게 변했으며,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이론이 아니라 그 당시 생활상을 통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는 제목만 봐서는 무척 어렵고 딱딱할 것 같지만 책의 내용은 그런 우려와는 정 반대다. 왠만한 장르소설보다 더 흡인력이 강해서 책을 한 번 들면 쉽게 내려놓을 수 조차 없다. 하지만 어디 재미뿐이던가. 정신 없이 읽고 있으면 파란만장한 자본주의씨의 일대기가 머릿 속에 촤르르 펼쳐지는 것만 같다. 

재밌게 몰입해서 읽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음이 무거워지곤 하는 때가 있었다. 잔뜩 낀 구름 너머 해가 떠 있긴 한건지 의심스러운 것처럼 역사가 과연 진보하는게 맞긴 한건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중세 시대에 토지를 소유한 소수의 귀족과 그에 착취를 당하는 다수의 농민, 농노가 나뉘어 있던 것처럼 근대에도 이와 조금도 다름없이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자본가와 그에 착취를 당하는 다수의 노동자가 나뉘어 있다는 사실. 혁명이란 것이 실은 지주와 귀족이 쥐고 있던 특권을 브루조아와 자본가가 차지한 사건일 뿐이라는 섬뜩한 사실에 눈 앞이 아득해지곤 했던 것이다. 과거엔 눈에 빤히 보이는 노예제라는 굴레가 사람들을 억압했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지만 너무도 강력한 돈과 욕망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힌 사람들을 보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단지 자본과 욕망은 자기 증식에 열중했을 뿐인데 주위의 모든 게 변해버린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동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자본주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그래서 자본의 자기 증식을 멈출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힘 말이다. 타인과의 동등한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힘이 과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힘보다 커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생각해 보면 자본의 자기 증식이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만 같고, 평등을 바라고 타인과 연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런 것만 같다. 번식을 위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기록된 본능적인 행동이 아닐까.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쩌면 유전자의 기억을 거스르는 인간의 지난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해 인류는 중세의 어둠 속에서 또 다시 천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림 출처: http://image.yes24.com/momo/TopCate09/MidCate06/853971.jpg

by cuspymd | 2009/09/08 02:41 |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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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08 07:49
요즘 책 읽는 속도가, 왜 이리 빠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ㅎㅎ 종류도 다양하고 말이죠. 여러 종류를 읽으시는 식성이 부럽습니다. 헤헤.

요즘, 제 네이트온 대화명이, <단 돈 천원이라도 돈을 처발라야 편해지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 회색분자, 나는야->이렇게 되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9/08 17:08
갑자기 책읽는 속도가 빨라졌다거나 요새 미친듯이 책을 많이 읽는건 아니구요~ㅋㅋ. 이미 읽었는데 아직 소감을 적지 못한 밀린 책들에 대해서 쓰는 거예요. 지금도 두 권 정도 더 남아 있어요~. 아직 소재 걱정은 없네요ㅋ.

글은 보통 이틀에 한 번꼴로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죠. 잘 지키진 못하지만요. 이미 읽은 책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쓰고,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영화에 대해 쓰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암꺼나 쓰는거죠.

블로그에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이후로, 읽은 책은 빼놓지 말고 소감을 남기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책은 영화와 달리 다 보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소감을 빼먹지 않고 쓰는게 부담스럽지 않거든요. 하여 지금까지 소감이 올라온 책들이 블로그를 재개한 이후 제가 읽은 책의 전부라고 할 수 있죠. 세어 보면 얼마 되지 않아요~ㅡ.ㅡ;;

제가 여러 종류의 책을 읽는게 아니라. 나스타님의 식성이 유달리 특이하신거죠. 허지만 읽는 양을 따지면 저는 비교도 안 되잖아요. 저는 종류가 다양한 대신 깊이가 놀랄만큼 얕죠. 반대로 나스타님은 문학에 국한되어 있지만 깊이가 깊잖아요. 세상의 모든게 공짜는 없는거죠. 등가 교환.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놓아야 하는 거죠. 이거 절대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 아니에요!!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냥 다 좋아한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 마다 저는 다 좋아한다는 건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곤 하죠. 취향이 없는 사람보단 취향이 강한 사람을 신뢰해요. 물론 나스타님은 정도가 쬐금 심하긴 하지만요~ㅋㅋ.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9/08 19:23
제가 어딜봐서 깊어요. 얼마나 얕고 허당인데요. 게다가 무지하기까지. 잘 아시면서, ㅎㅎㅎ 제가 취향이 강한 편이긴 하죠. ㅋㅋ 금방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어요. 불같이 일어났다가, 한 순간에 식어버려서- 텀이 생기면 우울해져요.

저는 요즘 책 많이 안 읽어요. 천천히 읽기하고 있잖아요, 다행스럽게 평탄하네요. 책을 많이 읽었나보다, 어떻게 읽었다가 중요하잖아요. 어차피 시중에 도는 책들을 전부 읽을 수도 없는 거구요. ㅎㅎ 커스피님의 독서활동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계속 기대할 게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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