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06일
못생긴 그녀와 사랑에 빠지다

17세기 중반 스페인 마드리드에 펠리페 4세'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의 궁전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궁정화가가 있었는데 이 벨라스케스'라는 궁정화가는 1656년 높이만도 3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의 제목은 [라스 메니나스]. 워낙 유명한 그림인지라 미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다들 한 번씩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라스 메니나스]라는 그림은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시점과 구도의 독특함으로 인해 자주 이야기되곤 한다. 이 거대한 그림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부터 그림 중앙에 빛을 받고 서 있는 깜찍한 마르가리타 공주, 그리고 공주를 둘러싼 여러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에서 화가는 그림을 그리던 중에 몸을 옆으로 빼고 모델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관찰자인 나를 말이다. 내가 그림의 모델일리 없을텐데 그는 왜 나를 보고 있는 걸까. 그러고보니 화면 중앙의 마르가리타 공주와 여러 시녀들도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와 그녀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은 그림의 원경에 놓인 거울을 통해서 밝혀진다. 거울 속에는 희미하게 두 남녀의 모습이 비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그림 속 화가가 그리고 있는 펠리페 4세 왕과 왕비이다. 어랏, 거울을 통해 가늠해 보니 저들이 서 있는 위치가 지금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딱 내 위치 아닌가. 모델의 시선과 감상자의 시선이 일치한다는 역설과도 같은 묘한 상황. 바로 이게 [라스 메니나스]가 재밌는 이유다.
이외에도 [라스 메니나스]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여태 어느 누구도 그녀를 주목한 적은 없었다. 화면의 오른쪽 구석 무표정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투박한 얼굴의 여자. 사실 얼굴만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조차 없다. 단지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고 있으니 여자라고 단정하는 정도. 머리가 큰데도 불구하고 옆의 나이 어린 시녀들보다 키가 작은 것으로 봐서 영락없는 난쟁이이다. 사람들은 어릿광대라고 했다. 무료한 궁정 생활에서 재주를 부리고 웃음을 주는 어릿광대.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앞 표지는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선 오른쪽의 난쟁이 여자를 제외한 모든 것이 실루엣 처리되어 원경으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그리고 여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난쟁이이자 광대인 그녀에게 시선을 모으도록 한다. 대체 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보잘 것 없는 그녀를 주목하도록 하고 있는걸까.

여자들은 흔히 그런다. 남자들은 이쁜 여자만을 밝힌다고. 세상의 어느 남자가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친구가 소개팅을 했거나 여의사에게 진찰을 받았거나 심지어 여자 깡패에게 두들겨 맞았더래도 어김없이 남자들은 묻는다. "이뻐?" 라고. 이쁜 여자들은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고, 못생긴 여자들은 아무리 이쁜 짓을 해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 남자들의 절대진리. 소녀시대 화면 보호기를 얻지 못해 쩔쩔매는 남자, 카라의 엉덩이춤에 침을 흘리는 남자, 오이를 못 먹는 제시카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는 남자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자가 보잘 것 없고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것은 단지 남자들의 사랑을 못 받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추한 외모는 그 자체로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뒤돌아 보는 시선들, 수근거리다 킥킥대는 웃음소리. 그것들은 추한 그녀들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다. 세월이 흘러 왕과 왕비가 사라지고 궁전은 박물관으로 변하고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며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그녀들의 삶은 여전히 어릿광대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초등학교 때 아주 유명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던 이 아이에겐 한 학년 위인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 역시 그녀와 판박이였다. 이 두 자매는 못생긴데다 더럽기까지 했다. 언제 씼었는지 얼굴엔 검은 때가 가득했고 옷은 더러웠다. 머리는 항상 수세미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그녀들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모두 그랬다. 그들은 대체 얼마나 가난했던 걸까. 그런데도 자식은 주렁주렁 낳아서 그녀들의 동생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나는 그 가족의 계보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놀곤 했다. 그녀들에 관해 농담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주요 놀이 중 하나였다.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데도 그래서 한 번도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도 그녀들은 우리의 장난감이 되어야 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주고 받는 농담도 서로의 외모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얼굴의 주름에 관한 농담, 튀어나온 배에 관한 농담, 여성의 화장에 대한 농담, 게다가 나와 다르게 생긴 외국인에 대한 농담까지. 뛰어난 미모는 금새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에 벗어난 것은 외면받고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외모적인 것이 아니면 농담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처음 본 여자들이 호감을 품을 정도로 근사한 외모를 가진 남자이다. 그런 그가, 세상 남부러울게 없을 것 같은 그가 못생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대체 왜? 세상 남자들 모두 입을 벌리고 의아해할 것이다. 에이, 변태겠지 단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변태가 아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비로소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잘 생긴 그와 못 생긴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박민규가 이런 소설을 쓰리라곤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무규칙이종소설가 박민규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써내리라곤 결코 상상조차 못했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도 긴가민가 했다. 이것이 정말 박민규가 낳은 것인지를.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쓴 인간이 이런 서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와 그녀가 만나는 장면부터 소설이 시작되는데 문장이 계속되고 책장이 여러 장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몇 발자국 채 걷지도 않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와 그녀는 되도록 천천히 길을 걸었고 박민규의 문장이 이들의 느린 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것이 박민규가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낸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도 이내 그들의 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여러모로 영화가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사진 엽서 몇장과 BGM 4곡이 들어있는 음악 CD가 동봉되어 있다. 소설에 BGM 이라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나 싶다. 음악을 들으며 그와 그녀가 걷던 거리를 같이 걸어본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Writer's cut 이라는 게 들어가 있다. 영화로 치자면 Directer's cut 에 해당하는 것일테다. 소설의 결말과 다른 또 하나의 결말. 처음엔 뜬금없이 이게 왜 나오나 싶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는 마음에 든다. [라스 메니나스]의 그림 속 그림처럼 소설 속 소설이라는 역설적인 묘한 상황. 바로 이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다.
수 년전 어느 날 박민규는 부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내가 만약 못생겼다고 한다면 그래도 저를 사랑해 주실 건가요?". 박민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재밌게 읽고 내려놓은 지금에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가슴 설레며 웃고 있는 지금에도 질문은 여전히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당신은 못생긴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나요?"
그림 출처: http://www.easyum.co.kr/images/arttalk/0424_14_1.jpg
그림 출처: http://image.yes24.com/momo/TopCate75/MidCate01/7403846.jpg
# by | 2009/09/06 01:40 | 책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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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ㅋㅋㅋ.
그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프로필 사진은 까뮈인데, 블로그 이름은 삼미슈퍼스타인 이유는 무엇이세요. ㅎㅎ
장동건과 류승범이라굽쇼~!! 나스타님 지금 농담하시는거죠?! 장동건이나 류승범이나 모두 영화배우잖아요~~. 비교를 하시려면 음...
"저는 잘생겼다는 범주를 모르겠어요. 전 장동건보다 옥동자가 더 잘생겼던데..."
이정도는 되어야 심미안이란 걸 인정할 수 있죠~!!
사진과 이름이라... 생각해보면.. 참 별다른 이유가 없죠. 블로그를 만들던 시기에, 그래서 이름을 지어야할 그 순간에 얼마 전 재밌게 본 소설의 제목이 생각났던 거겠죠. '아~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모 이런 식으로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팬'을 '펜' 으로 잘못 적었더라구요. 마침 어떤 이웃 블로거께서 '팬(fan)'을 '펜(Pen)'으로 일부러 다르게 쓴거냐고 물어 보시더라구요. 딱,
그때. '어~ 이거 나름 근사하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ㅋㅋ.
사진은 음... 그렇다고 박민규 사진을 넣을 순 없자나요~!!ㅋ 그 당시 저 카뮈의 사진을 어디선가 봤을꺼예요. 맞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엄청 멋진 말을 남긴 유명한 사진가 있잖아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구. 아마 그 사람의 사진들을 보다가 저 카뮈의 사진을 보고 뻑 간거죠.
'거참 되게 멋있네~' 라구요.
사실 소재 차용 모티브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하는 게, 신문기사, 일련의 경험, 추억들을 모티브로 글을 쓰다보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감성과 상상으로 점철된 글들이 나오고, 이야기의 구성을 보아도 사람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기이면서 과거 문학과 영화에 서사적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극단적으로이야기하자면지금나도는모든대중문화예술은표절에근간을두고있지않을까해요-_-;;;)음... 저도 여러 소설 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어떤 영화, 어떤 고전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군...이라고 중얼거릴 때가 다분하거든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편치않은 건 사실인거 같아요. 차라리 박찬욱 감독처럼 애초에 다 밝히면 투명하고 좋은데 말이죠. 저는 박쥐 시놉시스 접하고, 에밀졸라의 소설과 흡사한 이야기 구조네 했었거든요... 얼마 후 인터뷰 보니까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 테레즈라캥 이 두 소설에 대한 언급을 하더라고요.
의혹을 받아야만 작품 기획 배경을 밝히는 작가들이 양심적 문제죠. 철학가적이거나, 슈퍼 스토리 텔러의 독창성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심은 이해하나 팬으로서 작가적 양심에 상처를 받아 그 사람의 그릇 모양새를 내 마음대로 가늠하게 된다는 게 저는 더 서글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