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밤 중에 캄캄한 어둠으로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 보았자 내일 아침 정해진 시각에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사실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장 내일의 밥을 얻기 위해, 옷을 사 입기 위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돈입니다. 껌 한통을 사더라도 돈이 들고, 음악을 듣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돈이 들고, 블로그질을 하는데도 돈이 듭니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데에도 돈이 들지요. 돈이 없으면 숨쉬는 것도 불가능한 사회. 바꾸어 말하면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숨 쉬게 하는 사회라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좋은 돈을 위해서 사람들은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를 학교와 일터를 전전하며 보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과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즐거움을 기약없는 미래로 미뤄두곤 합니다. 오늘도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신없이 무언가를 외우고 또 외워야 하고 직장인들은 산처럼 쌓인 일거리 속에 허우적대야 합니다. 한정된 자원 안 에서 적당히라는 말은 발 붙일 곳이 없지요.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 남보다 더 공부를 잘 하고, 남보다 더 일을 잘 하는 것만큼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니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자 마자 학원으로 향할 수 밖에 없고, 직장인들은 밤 늦도록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내일 당장 학교를 관두면 어떻게 될까. 내일 당장 회사를 관두면 어떻게 될까. 모아 놓은 돈은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이 나겠지. 영원히 주류사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고, 결혼도 못할 거고, 부모님이 알면 기절하시지 않을까. 기차역 대합실에서 보았던 꾀죄죄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부랑자들. 대낮인데도 의자에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 땀을 닦으며 책으로, 모니터로 다시 고개를 파묻게 되지요.

[가난뱅이의 역습]은 이처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고 오싹해지는 삶을 살아온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야기입니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도쿄에서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을 가진 듯 보이는 그는 대학교 때부터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찌게 집회, 맥주 파티 투쟁, 카레 데모, 냄세 테러 등의 기발하면서도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방식의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대학교를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졸업하게 된 이후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의 삶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과잉의 시대에 생산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즉 제대로된 직장을 갖지 않고 빈둥거린다는 뜻이지요. 일하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는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모색의 과정에서 중고 물품을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 가게'를 열게 되고, 전단지나 인터넷을 통해 동료 가난뱅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더 나아가 연대를 꾀하기 위해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하게 되기 까지 이른 것이지요.
책의 전반부에서는 가난뱅이로 살아가는 노하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일본의 얘기라서 그런지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지요. 정작 재밌는 부분은 마쓰모토 하지메가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후반부의 내용입니다. 주류사회의 질서나 권위를 깨거나 조롱하기 위해 그가 벌인 갖가지 기상천외한 시위를 볼 때면 통쾌하기도 하고 심지어 제 얼굴까지 찌푸려질 정도로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회의적으로 느껴졌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마치 가벼운 일본 소설을 읽고 난 듯한 느낌이랄까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 나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하나오' 의 주인공 아버지를 보면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투텁고 높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갈등과 위기를 마주하게 되지만 깊은 고민이나 상처 없이 이를 너무 쉽게 뛰어 넘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팬터지라는 느낌 말이지요.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의 행동이 소설 속 주인공 처럼 엉뚱하고 거침이 없어서 마치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것 같은, 심지어 현실의 인물이 아닌 '팬터지' 속 인물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데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지난 5월 27일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살아있는 사람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유쾌한 가난뱅이 혁명가 마쓰모토 하지메 방한
특히, 요즘 우리 나라의 시국을 생각해 보면 책을 읽고 회의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이런 식의 시위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곤봉 세례를 퍼붇고 방패로 시민의 머리를 찍는 한국 경찰에 비해 시위대를 지켜주는 일본 경찰이 너무나 '팬터지'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촛불만 들어도 제지를 받는 한국에 비해 시끄럽게 음악을 틀고 춤추며, 찌게를 끓이고 꽁치를 굽는 일본의 시위가 너무나 '팬터지'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자, 다시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남들 모두 뛰는데 혼자만 걷고 있을 때의 불안감, 남들 모두 학원 가는데 혼자만 가지 않을 때의 두려움. 세상에 저 혼자 뒤떨어진 것 같고, 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절망감. 그래서 같이 뛰고 싶고, 같이 학원 가고 싶은 초조함. 하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런 감정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거짓 '팬터지'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팬터지'처럼 느껴지는 이 책 [가난뱅이의 역습] 속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실 속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일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의 무거운 짐을 벗고 자유의 달콤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 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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