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 삶 보다 더 깊은 향기를 가진 영화

여기 두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1200 개의 개봉관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7개의 개봉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1200 개와 7 개.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큰 이 두 숫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언급한 영화는 모두들 짐작하셨다시피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2] 이고, 두 번째 언급한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영화 [걸어도 걸어도] 입니다.

 엔터펙토리: '트랜스포머' v.s '걸어도 걸어도', 비주얼 비교

움직이지  않는 사물과 풍경,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관조하는 카메라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물과 그것을 수많은 샷과 다양한 앵글로 뒤쫒는 카메라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아이로니한 사실. 쉽게 상상이 가시나요?


엄마와 소년 그리고 소년의 새아빠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새아빠에겐 형이 있었는데 15년 전 사고로 죽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제삿날. 그들은 새아빠의 큰집에 가고 있는 중입니다.

엄마는 소년에게 묻습니다. 저번에 고양이 무덤(시체) 앞에서 왜 웃었어? 소년은 무덤덤하게 대답합니다. 친구가 죽은 고양이한테 편지를 쓰자고 그러잖아. 소년에겐 죽은 고양이에게 편지를 쓴다는 사실이 우스웠습니다. 이미 죽었는데 이미 세상에 없는데 편지를 쓰자고 하니 무척 우스웠던 모양이지요.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새아빠의 여동생 가족이 다녀간 큰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날 새벽. 아무도 모르게 집 밖으로 나온 소년은 하늘을 보며 죽은 친아빠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빠와 같은 피아노 조율사가 될 거예요. 그게 안 되면 의사가 될 게요. 아침까지만 해도 죽은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걸 이해하지 못 하던 소년. 그런 소년이 죽은 친아빠에게 말을 건넵니다. 과연 이 집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소년이 새아빠네 형의 귀신을 보기라도 한 걸까요.

흔히들 삶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많이들 하는데요. "삶은 관계다." 라는 말도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인도의 로빈슨쿠르소가 아닌 한,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항상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그러면 죽음은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요. 죽음 또한 삶과 같이 "죽음은 관계다." 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년에게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 곧 부재였습니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죽은 대상에 편지를 쓴다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라 여긴 것이겠죠. 하지만 소년이 하루를 묵은 새아빠의 큰집에서 아이로니하게도 소년은 그 존재하지 않는 것의, 부재하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새아빠의 형은 이미 죽은지 15년이 지났으나 그의 죽음(부재)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가족들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마치 전기장과 자기장 같이 그의 부재는 강한 자장을 형성하며 남겨진 가족들을 서로 끌어 당기거나 밀어 내고 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자식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고지식한 할아버지는 죽은 맞이를 대신해 새아빠가 의사의 직업을 이어주기를 바라며 새아빠는 죽은 형을 대신할 수 없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재하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 죽음이란 것을 단지 '사라지는 것' 의 동의어로 이름 짓지는 못할 것입니다. 죽음이 살아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접점은 어디일까요. 엄마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죽은)아빠는 너의 마음 속에 있는거야.

이미지 출처: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poster/2009/0601/M0010006__poster%5BW600-%5D.jpg

by cuspymd | 2009/07/07 01:59 | 영화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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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7/07 12: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7/07 23:16
헐~ 이런 허접한 글을 게재하고 싶다고요?!!
이건 리뷰가 아니라 감상문에 불과한데요~~.

이거 사기 아니에요??ㅡ.ㅡ

게재를 거절할 염치도 없네요.
허락합니다~.

이름만 알려주는 거니까
사기라고 해도 큰일은 안 나겠죠,.

'박명도' 라고 적어 주세요~.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7/07 14:59
산다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에요.
으앗, 오늘 또 숨 쉬고 있어!
이러면서 또 살아가려고 밥을 먹는 접니다. 하하.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7/07 23:39
나스타 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김훈 아저씨의 '밥벌이의 지겨움' 속 한 구절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게 어디 있더라 한참을 찾았는데도.
없는거예요.

"이상하다, 분명히 있을텐데.."

책꽂이를 뒤지고 뒤져도 찾을 수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친구를 빌려줬었던 게 마침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마침내 그 그절을 찾아냈죠~ㅋㅋㅋ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김훈 아저씨의 책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
이 구절만은 잊혀지지가 않았어요.
Commented by 나스타 at 2009/07/08 14:25
김훈 님 수필은 제게 금서입니다. 대체적으로 진정성 있는 수필들은 금서죠. 수필에 진정성이 없으면 어쩌나 싶은, 모순이 크지만, 어쩔 수 없어요 -_-

cusp까지는 읽겠는데, ymd가 붙으니까 소리가 묘해져요. 커스...님은 무어라고 소리내 말하세요?

커스폄드인가.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7/08 23:18
금서라굽쇼?
어쩔 수 없다는 건 진정성 있는 수필을 읽으면
어떤 통제 불가능한 증상 같은 것이 나타난다는 건가요??

가령 두드러기가 난다거나, 발열, 오한, 떨림, 어깨결림, 벌레 물린데(?),
호환, 마마 같은 증상 말이예요.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7/09 01:53
아! cuspymd.
의외로 싱거워요.
cuspy + md.

cuspy 는 해커라는 뜻.
예전 PC통신 '하이텔' 처음 가입할 때 ID 를 만들려고 고심한 끝에
영어 사전에서 찾아낸 단어예요.

md 는 제 이름의 약자.
cuspy 만으론 이미 등록되어 있는 사이트가 많아서 이름을 붙였죠.

커스피앰디.
소리내서 말하진 않아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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