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6일
재밌는 마이너 만화 잡지 - Sal No.4

만화가들이 직접 만드는 만화 잡지 Sal No.4 가 나왔다. 3권이 작년 10월에 나왔으니 거진 1년만인 듯 싶다. 우선 표지부터 맘에 든다. 3권의 표지는 너무 단조로웠는데 4권은 화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점을 잘 본다고 소문난 어느 복집인 듯한데. 빨간 커튼을 열고 들어서니 벽에는 여러 신령님들의 그림이 가득하고 방 가운데 흰 소복을 입은 보살님이 미소를 짓고 앉아 있다. 허연 얼굴에 까만 입술의 풍채 좋은 보살님의 몸에서 어떤 귀기가 발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무섭고 그래서 더 신비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점을 보는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집의 벽엔 귀기나 혹은 신기가 서린 듯한 그림들이 여럿 걸려있었다. 매우 친한 이웃이었던 터라 엄마를 따라 자주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난 그런 그림을 보며 자랐을 거고 엄마의 젖을 빨면서도 그런 그림에 눈을 맞췄을 거다. 그림은 항상 어떤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듯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 곁에 조용히 앉아 그 그림들을 골똘히 쳐다보던 한 얌전한 꼬마 생각이 난다.
표지도 표지지만 4권의 미덕은 3권에 비해 재미가 늘었다는 게 아닐까. 3권은 그닥 재미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권에 실린 대개의 단편들은 너무 소소한 일상을 그린 나머지, 이야기가 밋밋하게 느껴졌고 그렇지 않은 단편들은 또 너무 어려웠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지루할 수 밖에. 그로 인해 읽는 재미도 떨어졌다.
심지어 어떤 일까지 있었냐면, 친구 하나가 내 책상 위에 Sal n.3 이 있는 걸 보고 집어 들었다. 어? 만화책이네. 친구는 물었고. 그래, 만화 잡지야. 대답하는 나. 나 좀 읽을게. 라고 말하며 친구는 살북 3권을 빌려갔는데, 세상에 10분을 못 넘기고 책을 도로 갔다주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뭐 이런 만화책이 다 있냐.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10분도 안 되서 책을 도로 가져다 주었을까. 그것도 일반책도 아닌 만화책을. 솔직히 살북은 시중의 자극적인 만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나 조차도 살북 3권을 다 읽고 나서 느낀 허탈감이 적지 않았다. 책을 덮었는데도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았고 왠지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마 살북 3권이 나오고 나서 한두 달 뒤에 4권이 바로 나왔다면 4권을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권을 읽고 느꼈던 불만감을 완전히 희석시키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하지만 살북 4권은 3권에 비해서 한결 읽는 재미가 크다. 아이디어가 번뜻이는 작품들도 있고, 또 그런 작품들이 참신함에서만 그치는게 아니라 재미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일상을 다룬 작품들도 전보다 더 공감이 가고, 심심하지 않으며 흥미있게 읽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좀더 잘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가 이경석은 [전원교향곡], [좀비의 시간] 에서 독특한 그림체와 구수한 사투리, 수많은 인물 군상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보여준 개성이 뛰어난 만화가다. 살북 4권에서 그의 '원고료'라는 제목의 작품이 눈에 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취직을 하지 못한 어느 청년 백수다.
"나 같은 놈 썩히는 건, 이 나라 경제에 데미지다" 라고 호기있게 외쳐보지만 날새도록 술 먹고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홀로 자취방으로 향해야 하는 인생의 처량함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쓰린 속 달래며 이불 뒤집어 쓰고 막 잠이 들려는 찰나. 까아까아. 창 턱에서 까치 한 마리가 울어댄다. 저 까치 마저 나를 우습게 보는가. 얼마나 빡 돌았을지 상상이 간다. "너어 당장 잡아 죽여버린다" 며 이불을 박찬다. 이 단편은 까치를 잡으려는 사내의 처절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출구가 없는 사회에선 사내의 아픔이 커질수록 까치에 대한 증오만이 활활 타오른다.
이미지 출처: 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9616383x_1.jpg
# by | 2009/11/06 00:58 | 만화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