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타파 릴레이] 영화관 그거 혼자 갈 수도 있는 겁니다.

[편견타파릴레이]
1.자신의 직종이나 전공 혹은 그 이외의 것으로 인해 주위로 부터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대한 파도타기 입니다.
2.추천을 받으신 분은 다음 주자분 3분에게 바톤을 넘겨 주시면 됩니다.
3.기한은  7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으흐흐, 헌책방IC 님에게 릴레이 바톤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릴레이를 처음 해 보는 거라 신기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이거 제가 해도 되나 싶기도 하구요. 바톤은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글부터 쓰고 바톤 신청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바톤 신청을 하고 글을 써야하는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지만 저는 제 맘이 편해지도록 이 '릴레이'라는 것을 하나의 놀이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처럼 끝없이 재생되고 반복되는 그런 블로거들만의 유희 말이지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극장을 찾아 자주 영화를 보곤 합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눌 때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에 관한 얘기가 자주 나오곤 하는데요. 제가 본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면 가끔 혹은 자주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영화 누구랑 봤어요?"

그럼 저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요.

"혼자 봤어요."

대답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리고선 불쌍한 사람을 쳐다보듯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또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면 혼자 볼 수도 있는거죠. 저는 이미  봤던 영화를 또 보고 그러기도 하는데 매번 같이 볼 수는 없잖아요."

옆의 한 후배가 씨익 웃으며 대꾸합니다.

"선배, 그래도 슬픈 건 어쩔 수 없네요."

이러면 게임은 끝난 겁니다. 저는 헛웃음 지으며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는 겁니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저는 바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 이후에 끊임없이 여기에 대꾸할 논리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녁에 퇴근 한 뒤 화장실에서 똥을 싸며 혼자서 이런 말이나 지껄이게 되는 겁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집단적인 성격과 개인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영화관에서 단체로 모여서 영화를 관람하게 되지만 이내 불은 꺼지고 스크린과 관객은 1대1로 대면하게 된다. 비록 한 곳에 모여 있지만 영화를 본 다는 것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것이다.'

라고 말이지요ㅋㅋ. 이렇게 사람들은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공포심까지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혼자서는 감히 영화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특히 영화관이 젊은 남녀 커플들의 제1의 데이트코스로 간주되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홀로 영화 보기를 즐기는 사람의 입지는 너무도 좁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천금같은 이번 기회를 들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렇게 다시 한 번 외치는 것 입니다.

"영화관 그거 혼자 갈 수도 있는 겁니다~!!"

[다음 바톤을 받으실 분]
...요청 중입니다ㅡ.ㅡ;;..



by cuspymd | 2009/07/05 00:44 | 영화 | 트랙백 | 덧글(0)

한겨레21 - 766호

목요일 저녁, 어김없이 한겨레21 767호가 도착했습니다. 이번엔 무슨 기사들로 채워졌을까 궁금해지지만 설레는 가슴 뒤로 하고 지난 766호를 되돌아 봐야겠죠~.


표지 제목 '나는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심스, 경찰이 수집한 개인정보 2670만2783명분" 에서 보이듯이 이번 호의 표지 이야기는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인 '심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심스'는 2004년부터 경찰에 도입된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이라고 하는데요. 범죄에 관련된 정보 일체가 디지털 문서로 저장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고 합니다.

범죄 수사 TV 시리즈인 'CSI' 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극 중에서 범죄자의 지문이나 사진을 가지고 그 인물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장면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이처럼 '심스'도 범죄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서 구축한 시스템일 텐데요.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너무나 무분별하게 정보를 수집한다는 사실입니다. 유죄로 판결난 사건뿐만 아니라 단순 용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작성된 자료들까지 모조리 '심스'에 저장된다는 것이지요. 하여 나중에 정보를 검색했을 때 무고한 사람들이 '심스' 에서 조회된 이력으로 인해 엉뚱하게 혐의를 받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판결이 확정된 피의자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단순히 혐의가 의심되어서 간단한 조사를 받았을 뿐인 사람들의 조사 자료까지 저장되는 것은 너무 무분별한 정보 수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나 다를까 촛불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경찰서에서 하루나 이틀만에 풀려난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모두 '심스'에 저장되어 관리된다고 합니다. 그외 또 문제가 되는 점은 정보의 보안 문제입니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저장되기 때문에 정보의 유출가능성이 그만큼 높은데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장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네요.

이처럼 표지이야기에서는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인 '심스'뿐 아니라 경찰-검찰-법원을 연결하는 정보시스템 '킥스' 등 공권력의 무자비한 정보 폭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로 '빅브라더'의 세상이 점점 다가오는 것만 같네요.

특집으로 다룬 기사 중에 눈에 띄는 기사는 40대의 위기를 다룬 '40대, 버려진 영혼의 노숙자여' 제목의 기사입니다. 회사와 가정을 위해 죽도록 일해왔지만 회사에서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고, 그래서 집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가족과는 이미 소통이 끊긴지 오래라는 우울한 내용의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 중 "어제의 '386'은 오늘의'486'이 되었다." 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네요. 80년대 마지막 학번이 올해로 마흔이 되었기 때문에 '30년대에 80년대 학번'인 386 세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386 컴퓨터보단 486 컴퓨터의 성능이 훨씬 뛰어난데 사람은 컴퓨터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아 씁쓸해 집니다.

저에겐 이 40대의 기사가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한 저의 미래가 될 게 뻔하거든요.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죠. 무언가 변화를 꿈꾸기에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죠~.

이미지 출처: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0623/1245639361_124563932507_20090623.JPG

by cuspymd | 2009/07/04 12:36 | | 트랙백 | 덧글(4)

[마더]와 [트윈픽스] 그리고 [사일런트 힐]

봉테일 감독의 영화 [마더]. 지난 5월 28일날 개봉했으니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트랜스포머2]의 상영관 폭식 여파로 집에서 가까운 메가박스에서는 이미 [마더]가 막을 내렸네요. 이미 다양한 해석들이 즐비하고 수많은 영화평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더이상 나올 이야기거리는 없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요. 이런 생각이 어리석게도 [씨네 21]에 마더에 관한 재밌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씨네 21 -  [영화읽기] 변두리 누아르와 검은 감성

이 기사에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영화 [마더]를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TV 드라마 [트윈픽스]와 비교하여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기사에서는 [마더]와 [트윈픽스]의 닮은점에 대해 주목해서 영화 [마더]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트윈픽스]라는 드라마는 90년대 초반 KBS 에서 방영을 했었죠. 한편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인상만큼은 매우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리모콘으로 체널을 돌리면서 슬쩍슬쩍 훔쳐본 것 뿐인데도 말이지요.


어떤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무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드라마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너무 우울했습니다. 드라마 속의 스산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나 어딘지 모르게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풍기는 아주 묘한, 악취와도 같은 우울과 기괴함이 제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뭐랄까 촉각적이라기 보단 다분히 후각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위 기사 속의 표현을 빌자면 ' 프랑켄슈타인의 신체처럼 꿰매진 유기체적 인상' 같은 것 말이지요.

트윈픽스(Twin Peaks) - 오프닝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이 드라마의 '오프닝' 입니다. 음울한 음악과 함께 메마르고 단조로운 오프닝이 시작되곤 했는데요. 특히 두둥~두둥~ 하는 특유의 우울한 멜로디는 저를 거의 미치게 만들곤 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보통 밤 11시즘 방송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대개 이 시간에는 혼자서 TV 를 보곤 했는데 체널을 돌리다 우연히 이 오프닝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못볼 것을 본 것 처럼 황급히 체널을 바꾸던 기억이 납니다.

[PS] 사일런트 힐 - 오프닝 

[트윈픽스]의 오프닝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PS(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사일런트 힐] 이 생각납니다. 게임 제작사 '코나미'에서 만든 호러게임인데요. 영화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익숙한 제목일 것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게임 진행 방식에 PS의 지저분한 그래픽까지 더해져 체감 공포를 극대화한 호러 게임이었는데요. 이 게임의 오프닝도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독특하면서도 왠지 우울한 음악이 [트윈픽스]의 오프닝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by cuspymd | 2009/07/03 01:51 | 영화 | 트랙백 | 덧글(2)

비사교적인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

인생의 대부분을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혼자서 대화를 나누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볼때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대고 있는 모습말입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 대화를 나눌 타인이 없으니 자신이 화두를 던지고 자신 스스로가 그 화두에 답을 하는 선문답 같은 대화를 입 속에서 중얼거리곤 하는 것이겠지요. 이렇다 보니 이런 사람들은 대개 보통 사람들 보다 생각이 더 많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비사교적인 사람들의 행동은 더욱 가관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 또한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앉거나 혹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속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가,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어야 하는가, 이 타이밍에는 자연스럽게 웃어야 하는가, 조금 더 앉아 있어야 하는가, 저쪽 자리로 옮겨야 하는가, 타인이 보기에 내가 지금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가, 화장실에 갔다 올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의 사소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지요.

물론 보통의 사람들도 그런 생각들을 마찬가지로 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생각과 상황과 행동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비사교적인 사람들은 이런 수많은 생각들 속으로 서서히 그리고 깊히 침잠해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다 더욱더 늪 깊숙히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말입니다. 생각들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국에는 그 자리가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해져 버리게 되고 맙니다.

그들은 결국 그 자리에 있으되 그 자리에 없는 것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고 맙니다. 까뮈가 말했던 부조리하다 라는 말을 이런 때 써야하는 것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그들은 또 고민할 지도 모릅니다. 어색한 자리, 어색한 사람들 속에서 방황하던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그 자리를 뛰쳐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말이지요.

어둡고 칙칙한 뒷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그들의 비틀렸던 얼굴에는 이내 평안함이 찾아오고 심지어 희미한 미소가 깃들기까지 합니다. 가벼운 발걸음 뒤로 진하고 깊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by cuspymd | 2009/07/02 01:09 | 트랙백 | 덧글(2)

천년습작 - 글쓰기의 진정성


이미지 출처: http://image.libro.co.kr/book_img/11507/0100008452280_03.jpg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이라는 부제가 붙은 [천년습작]. 감상문을 쓰기 위해 인터넷 상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쭈욱 한 번 훑어 봤습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 책이라서 그런지 서평의 수도 어마어마하고 글의 수준도 상당히 뛰어나더군요. 찬찬히 그런 글들을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이 책에 대한 글들이 이미 이렇게도 많은데 게다가 글들의 수준도 다들 빼어난데 지금에 와서 내가 이 책에 대해 어줍잖게 끄적거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죠.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생각에 스스로 절망하면서 좌절하면서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화끈 거리면서 글쓰기 시도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바로 이 [천년습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절대 광고 멘트가 아닙니다.ㅋㅋ) 별 대단한 글쓰기 비법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 만큼은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손으로 쓴다는 것. 지적이고 고상한 행위이기 이전에, 하얀 모니터 화면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꾹꾹 눌러서 글씨를 쓰는 너무도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 주었습니다.

빠르게 읽히는 책이지만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읽고 나서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를 정도로 말이지요. 이 사람이 나한테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구요. 과연 이 책에 본질적인 무언가가 들어 있기는 한 것인가, 단지 글쓰기에 관한 찬란한 수사학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가가 보는 것 그리고 보여주는 것이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마치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믿음이 약한 신도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데카르트 처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의심할 수 없이 확고한 것은 '김탁환'이란 사람이 책을 너무나 좋아했고, 그런 책들에 이끌려 글쓰기에 몰두했고 그런 매혹의 시간들을 지나 작가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 바로 이것이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느꼈던 묵직함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by cuspymd | 2009/07/01 01:17 | | 트랙백 | 덧글(6)

반두비 - 피부 색깔에 대한 편견


이미지 출처: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poster/2009/0609/M0010003_main_poster%5BX160,230%5D.jpg

'인간의 두 얼굴' 이라는 EBS 다큐멘터리에서 한 가지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백인 남성 한 명과 동남아시아인 남성 한 명이 각각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위에서 지도를 펴 들고 길을 물어 봅니다. 백인 남성이 길을 묻자마자 행인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와 길을 알려줍니다. 행인들은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손짓과 몸짓을 섞어가며 친절히 길을 가르쳐 줍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길을 묻지도 않았는데,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동남아시아인 남성이 길을 물어올 때엔 행인들은 무심히 지나칩니다. 길을 찾고 있다고, 영어를 할줄 아냐고 물으며 한 발짝 다가가는 순간 행인들은 손사래를 치며 동남아시아인을 지나쳐 갑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행인들의 손사래 치는 모습에서 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겠죠.

거리에서 길을 묻는 것만도 께름칙한데 이번에는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청년이 교복을 입은 풋풋한 여고생과 사랑에 빠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과연 이를 용납할 수 있을까요.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끌벅적한 퍼래이드를 벌이고 있는 거대한 로봇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상영관을 지키고 있는 한국 영화 [반두비]~!!! 이렇게 느낌표를 세 개나 붙이면서까지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일요일 10시 50분 프로를 봤는데 좌석에 앉은 사람이 열 명도 안 되더군요. 제가 간 CGV 는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라. 보는 내내 옆 상영관의 우퍼 소리가 쿠궁쿠궁 쉴새 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더군다나 옆 상영관은 [트랜스포머2]. 처음부터 끝까지 쿠궁 대는 영화였으니 말 다했죠.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나는 동남아시아 사람이나 이슬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편견이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영화를 보는 종종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고생 '민서'의 방. '민서'와 이주 노동자 '카림'은 침대에 나란히 앉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둘은 마주 봅니다. 이 순간에 저도 따라 어색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감독이 어떤 수위까지 표현할 것인가. 혹시 둘이서 배드신을 찍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만약 '카림'이 백인이었다고 해도 제가 이런 걱정을 했을까요.

이 영화 역시 엔딩이 인상적입니다.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앞 작은 식당에 간 여자 주인공 '민서'는 예전에 남자 주인공 '카림'이 손수 만들어 주었던 음식을 시킵니다. 테이블 위의 음식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던 '민서'는 '카림'이 먹던 것 처럼 손가락을 사용해 밥을 한 움쿰 쥐고 입으로 가져갑니다. 카림은 추방당했지만 우리에겐 아직 소통의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일까요. '민서'의 먹는 모습이 계속 보여지는 채로 자막이 올라갑니다.

사람이 극히 적었는데도 한 여자분은 나가면서 이렇게 소리치더군요. "이게 뭐야~~"

그리고 다시 처음의 이야기. 길을 묻던 동남아시아인은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들 속에서 1시간이 넘도록 발을 동동 굴러야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지나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20%는 동남아시아인을 지나치지 않고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by cuspymd | 2009/06/28 23:29 | 영화 | 트랙백(1) | 덧글(2)

트랜스포머2 - 40대의 트랜스포머?

이미지 출처: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still/2009/0616/M0020003_still_3%5BW470-%5D.jpg

<내용 공개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는 내용 공개에 의해 재미가 반감되는 영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트랜스포머2]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같이 보신 분은 [터미네이터4]보다 10배는 더 재밌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그 분은 두 영화 모두 상영 시간 종종 조셨습니다. 이 영화를 저녁 10시 30분에 본다는 게 무리였을까요. 아니면 스토리 상의 문제였을까요.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눈꺼풀이 무거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별다른 재미를 못 느꼈던 것에는 아마 무거운 눈꺼풀도 한 몫을 했을 것 같습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상영시간이 저에게는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영겁의 세월동안 트랜스포머들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여주인공 메간 폭스. 화면에 등장하기만 해도 가슴이 떨려오곤 했습니다. 근데 대체 이 분은 이 영화에 왜 나오시는 걸까요. 등장인물이 아니라 영화 속 배경에 속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영화 초반, 큐브 조각을 발견한 주인공 샘은 그 중요하고도 위험한 물건을 여자친구에 맡기고 고향을 떠납니다. 순간 의아했지요. '아니 그 위험한 물건을 대체 왜 니가 그렇게 아끼고 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여자친구에게 건네는거냐' 물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후 이 사랑스런 여자친구가 샘이 있는 곳으로 합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편과는 볼륨 자체가 다릅니다. 무려 40대의 트랜스포머가 등장하니 말이지요. '로봇이 40대나 나온다니 과연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보여줄까' 기대를 너무 했나 봅니다. 로봇의 수는 늘어났지만 존재감의 무게는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클라이막스인 사막 전투신에서 엄청난 수의 디셉티콘 로봇들이 출몰하지만 고작 하는 짓이라곤 건물 뒤에 숨어서 미군병사들과 총질하는 것뿐입니다. 대다수의 디셉티콘 로봇들은 단역 미군병사1, 미군병사2 수준의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눈에 띄는 디셉티콘 로봇이라곤 전작의 디셉티콘 로봇+1~2인 수준이지요.

스팩터클이 압도적으로 증가했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폭탄이 터지는 등의 스팩타클이 증가한 것이지 로봇에 의한 스팩타클은 전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더군요. 왜그리 쓸데없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지 의아한 구석도 많았습니다. 로봇을 보러 간 것이지 전투기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거든요.

등장하는 로봇의 수가 증가한다고 해서 영화의 상영시간이 그와 비례해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등장 로봇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로봇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그와 비례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의 수가 40 이 400 이 되고, 400 이 4000 으로 늘어난다면 영화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고작해야 영화 [반지의 제왕] 속의 대규모 전투신 밖에 더 있겠습니까. 과연 앞으로 [트랜스포머] 시리즈 속 로봇들의 운명이, 1분 동안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이름 없는 오크들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by cuspymd | 2009/06/28 00:29 | 영화 | 트랙백(1) | 덧글(2)

한겨레21 - 주간지의 구독은 쉽지 않다.

[한겨레21]에서 [아름다운 동맹]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의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구독료의 일부분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단체들 중 하나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정기구독하던 [팝툰]이라는 만화잡지가 마침 종료된 참에 좋은 기회다 싶어서 이 캠페인을 통하여 [한겨레21] 정기구독을 신청했습니다.


[한겨레21 - 766호 표지]

[한겨레21]을 실제로 받아 보기 전까지는 이 시사잡지가 주간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신문 홈페이지에서 [한겨레21] 기사를 자주 읽기는 했지만 이 잡지가 주간지인지 월간지인지는 관심 밖의 문제였으니까 말이지요. 이전에 보던 [팝툰]은 1년간 정기구독을 했는데 구독 초기에는 격주간지 형태였고 2009년 3월을 기점으로 월간지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팝툰]은 만화 잡지였기때문에 읽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더구나 주간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읽는 부담이 훨씬 덜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21]은 시사잡지입니다. 신문을 놔두고 이런 시사 주간지를 보는 이유는 신문보다 더 깊이있고 기획력있는 기사를 보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빠르게 대강대강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매주 목요일마다 잡지가 도착하는데 3주가 지나는 지금, 일주일 안에 이걸 다 읽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음 [한겨레21]을 받아들었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정독을 시도했는데요. 왠걸, 절반도 채 못 읽었는데 다음 호가 배달되는 안습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사람은 배우는 동물아니겠습니까. 시행착오를 거치고 노선을 차츰 수정해 나가는 거지요. 저도 하는 수 없이 읽는 방법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일단 처음 받아든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대강 훑어 봅니다. 이번 호는 어떤 기사들로 채워져 있는지 전체적으로 훑어 보는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 관심이 가는 기사부터 골라 읽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무겁고 어려운 기사는 피하게 되고 가벼운 기사들만 읽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겨레21]의 표지 이야기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야만 합니다.

가뜩이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저로서는 주간지를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겨레21]구독 이후 다른 책들의 독서 진도는 굼벵이 기어가는 것보다도 굼뜨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느리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독서의 속성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독서는 마음 먹은대로 욕심 나는대로 따라주지 않습니다.

일례로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을 가면 저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혼미해집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그 거대한 공간을 메우고 있지만 제가 일생동안 볼 수 있는 책들은 고작 한 쪽 벽면에 꽂혀있는 책들보다도 적을 것이거든요.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저는 크나큰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요. 독서란 그렇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굳건한 성벽처럼 제 앞에 마주하는 것만 같습니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목요일 저녁, [한겨레21] 766호를 받아든 저는 또 하나의 굳건한 성벽 앞에 홀로 마주 선 기분입니다.ㅋㅋ
 
이미지 출처: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0623/1245639361_124563932507_20090623.JPG

by cuspymd | 2009/06/26 00:49 | 사회 | 트랙백 | 덧글(2)

이블데드 시리즈를 보다(2)


[이블데드2] 1987년도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전작과 거의 비슷합니다. 전작과 다른 별개의 내용이 아니라 전작의 내용을 좀더 업그레이드시킨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전작과 같이 주인공 부르스 켐벨이 자동차를 차고 숲속을 지나, 다리를 지나 산장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재밌는 점은 여기 나오는 자동차인데요. 이 자동차는 이블데드 모든 시리즈에 등장합니다. 심지어 주인공이 다른 세계(과거 중세시대)로 빨려 들어가는 3편에서도 이 자동차는 주인공과 함께 과거에 내 던져지게 됩니다. 차종은 모르겠지만 노란 색상에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특이해서(두 개의 네모난 사각형으로 나뉘어져 있음) 한 번만 봐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데요.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주인공에게 저주를 퍼부은 노파의 바로 그 차입니다.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이 차가 노파의 차라고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노파와 격투가 벌어지기 전 은행 주차장에 이 차가 주차되어 있는 장면이 보여지고, 주인공 여자가 노파의 집에 찾아갔을 때에도 노파의 집 앞에 이 차가 주차되어 있지요. 흐음, 이 정도면 직접적으로 노파의 차라고 나온걸까요?

1편과 같이 주인공 브루스 켐벨은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산장에 도착하지만 1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입니다. 1편에서는 차에 주인공 여자 친구 이외에 다른 친구들(남자 하나, 여자 하나)이 같이 타고 있었으나 2편에서는 주인공과 여자 친구 이렇게 둘뿐 입니다.  재밌는 점은 초반 스토리가 1편과 비슷한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산장에 도착하고, 여자 친구와 놀다가, 죽음의 책과 녹음기를 발견하고, 저주 받고, 여자 친구 좀비로 변하고, 죽이고 묻는 것까지의 내용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본편이 시작하기 전에 지난 줄거리를 얘기하듯이 말이지요. 꼭 "이미 했던 얘기 또 하지 않겠다. 얘네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싸우는 얘기가 시작됩니다. 2편은 1편처럼 무섭기만 하진 않지요. 공포와 웃음 코드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1편에서 이미 한번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스토리 상 전혀 관련이 없지만) 2편의 주인공은 악마와의 싸움에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한 마디로 게임이 된다는 것이지요. 주인공의 행동에 여유가 묻어나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여기엔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전기톱이라는 막강한 무기의 등장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라스트씬 또한 인상적입니다.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워 악마를 다른 세계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눈물 어린 고생 끝에 드디어 차원의 문이 열리고 주인공을 줄곧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악마 놈을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데 마침네 성공을 하는데요. 아뿔싸, 악마가 빨려 들어간 뒤에도 차원의 문은 닫히지 않고 끝내 주인공까지 집어 삼키고 맙니다. 울렁울렁하면서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 조잡한 시각 효과가 이어지고 주인공은 쿵 하고 허허벌판에 떨어지게 됩니다. 철갑 기병들이 판을 치는 과거 중세시대의 한 복판으로 말이지요.

무슨 얘기냐 하면, "영화 끝났다, 니네 3편 볼 준비나 하고 있어라." 라는 감독의 뜻 깊은 얘기입니다.

 

by cuspymd | 2009/06/25 00:59 | 영화 | 트랙백 | 덧글(2)

용산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용산참사가 벌어진지 다섯달이 지났습니다. 또 다시 사람들은 잊어가고 있습니다. 마침표가 찍혀진 것 처럼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도 용산 그 현장에서는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났습니다.

히틀러만이 사람을 태워죽인 것은 아니다

사진가 노순택의 용산참사 현장 사진과 짤막한 시구들로 이루어진 기사인데요. 구체적인 사건을 다룬 기사들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이 기사를 보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에는 말이지요.

바로 이틀 전인 6월 21일 일요일 경찰은 용산의 농성장과 사제단 단식기도장의 철거를 시도했습니다. 경찰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신부에게도 힘없는 노인에게도 자비란 없습니다. 위의 기사에 사건 동영상도 링크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기사 속 마지막 시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히.틀.러.만.이.사.람.을.산.채.로.태.워.죽.이.는.것.은.아.니.다.


by cuspymd | 2009/06/24 00:11 | 사회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