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냐 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봄비가 온다고 눈이 다 녹아버렸다고 쓰자마자 눈이 온다. 눈이란 녀석도 꽤 다혈질이다. 저 안 보이는 꼴이 좋아 키득거리자마자 여보란 듯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어디 무서워서 블로그 글 올리겠나. 불쑥 뒤를 돌아다 본다. 녀석이 훔쳐보고 있지는 않은지. 비겁한 녀석. 어제 글을 쓸 때 어깨 너머로 몰래 엿본게 분명하다.

하지만 녀석도 힘에 부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오늘 내린 것이 비였는지 눈이였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녀석은 부쩍 몸이 무거워 보였고 땅에 떨어질땐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먼 길을 단 걸음에 달려오다니. 화가 나도 어지간히 났나보다. 그래, 아직 봄이 아니다. 입춘은 이미 지났지만, 비록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분명 눈이 내린 오늘은 여전히 겨울이다.

날씨가 따듯해서 눈이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린게 아니다.  녀석은 하늘에서부터 이미 울음을 머금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땅에 닿던 순간 들리던 부시럭거리는 소리도 어쩜 녀석이 터트린 울음소리가 아니었는지. 눈이 오던 오늘 아침 거리를 다시금 곰곰이 떠올린다.

비오는 겨울밤.

비오는 겨울밤이다. 오늘 날씨를 보면 겨울이라기도 뭐해. 비가 봄을 몰고 왔는지 얇은 옷을 입어도 춥지 않았으니까. 저번에 내렸던 큰 눈 기억하니.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눈을 치웠어. 거리 곳곳에 한 가득 눈이 쌓였지. 추위와 바람, 그리고 시간. 그 위에 햇빛이 덮였지. 녹고 얼고, 얼고 녹고를 반복하며 눈은 얼음이 된 것 같아. 전에도 비가 몇 번 온 적이 있어. 얼음이 된 눈은 내리는 비에 아주 천천히 녹았지.

처음으로 비 오던 날이 생각난다. 처음으로 눈이 녹은 날이기도 해. 겨울 내내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던 눈들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지. 눈이 녹은 자리에서 처음 발견했던 게 귤 껍질이었어. 그 다음으로 과자 봉지, 마지막으로 담배 꽁초를 보았지. 이제껏 살면서 그렇게 많은 담배 꽁초를 본 건 처음이야. 재떨이를 제외하고 말이지. 눈을 뭐에 비유할 수 있을까.

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일 때 사람들은 꿈을 꾸지. 하지만 눈은 영원하지 않아. 시간이 흘러 곧 눈이 녹으면 눈 덮인 자리엔 버려진 담배 꽁초같은 초라한 현실만이 남지. 젖은 담배 꽁초 만큼  끔찍한 게 또 있을까. 비오는 날 눈 녹는 거리를 걸을 땐 오롯이 앞만 보고 걷도록 주의해야해.

오늘도 비가 온다. 안심하고 땅을 보고 걸어도 돼. 눈이든 얼음이든 이제 더이상 찾아볼 수 없으니까.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종일 소리 없이 내렸지.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 중엔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 왜 비가 조용이 내리는 걸까. 거리의 눈도 모두 녹아버리고 심심해할 만도 한데. 혹시 비가 무언가에 골똘히 열중해 있는건 아닐까.

커트 코베인을 추억하다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4일 자살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의 시신 위에 놓여있던 총은 '레밍턴 모델11 20-게이지'였다. 총기의 대가 존 F 브라우닝이 설계한 이 총은 미국에서 최초로 생산된 자동 장전식 샷건으로 1905년부터 1947년까지 대략 85만정이 생산되었다. 자살 5일 전, 커트 코베인은 친구 딜란 칼슨과 함께 시애틀의 스탠 베이커 스포츠 상점에 들어섰다. 그는 고풍스럽고도 날렵하게 생긴 '레밍턴 모델11'을 집어들었고 점원에게 307.38 달러를 지불했다. 이미 경찰이 그가 가진 총을 모두 압수했기 때문에 그는 친구 딜란의 이름으로 총기를 등록해야만 했다. 

스타의 자살은 연쇄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멜랑꼴리에 전염된 대중들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스타의 죽음을 뒤따른다. 과연 90년대를 뒤흔든 커트 코베인의 자살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이끌었을까. 그가 경험하지 못한 21세기, 이 시대의 기타 키드들은 그의 죽음이 아닌 그의 기타 리프로 그런지 악동 '커프 코베인'을 추억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 -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 사회

매서운 추위가 대지 위에 낮게 드리운 1월9일 토요일 오후 12시.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열렸다. 작년 1월20일 새벽 경찰 특공대의 강제진압으로 철거민 5명이 사망한지 355일 만이다. 시민들은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고 수십 개의 시민단체 깃발과 만장 깃발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나부꼈다. 젖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찬 바람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영결식은 김태연 장례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오후 3시 영결식을 마치고 용산참사 현장을 향한 행렬이 시작되었을 때 하늘에서는 눈발이 흩날렸다.




감추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 - 영원의 술래잡기

갑작스런 폭설이 끝난 뒤 닥친 혹한으로 전국이 꽁꽁 얼어 붙었으나 인터넷은 김혜수와 유해진의 열애설로 후끈 달아 올랐다. 지난 화요일, 친구는 메신저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려왔다.

친구: 김혜수와 유해진 열애설 기사 났다.

나: 유해진?

친구: 어, 유해진.

나는 저 유해진이 내가 생각하는 그 유해진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왠지 저 유해진은 내가 생각하는 그 유해진이 맞을 거라는 예감이 어렴풋 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주저했다. 주저하며 "유해진?" 이란 질문을 통해 내 예감이 맞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나마나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일까. 뒤이은 대화를 들어보자.

나: 뻥치고 있네.

친구: 진짜야. 기사에 났어.

나: 진짜로?!

친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익살쟁이 같으니라고. 뻥을 쳐도 어쩜 이렇게 재치있게 뻥을 친담'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친구는 역시 그런 재치꾸러기가 아니었다. 김혜수와 유해진의 열애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의외라는 반응과 유해진이 부럽다는 반응. 지난 20년 동안 김혜수를 좋아해 왔다는 한 후배는 큰 상실감을 토로했다. 글래머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그는 김혜수의 자리를 대신할 후보자로 신세경을 꼽았는데 신세경은 아직 김혜수를 대신하진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라 할 수 있는 김혜수의 열애설인 동시에 '미녀와 야수'라는 의외의 조합은 인터넷 상에 격렬한 반향을 일으켰고 열애설과 관련된 온갖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실렸던 김혜수 열애설, 결혼설 기사의 역사에서부터 김혜수가 반한 유해진의 매력 분석까지 기사 내용은 실로 다양했다. 그 와중에 '일요신문' 연예 전문 신민섭 기자는 유해진과 김혜수에 대한 불만을 담은 글을 미디어 블로그 '3M흥업'에 실었다.

[3M흥업] 유해진과 김혜수, 동료 연예인과 연예 언론을 곤경에 빠뜨렸다
 
김혜수와 유해진의 열애설은 지난 2008년 11월에 이미 보도가 됐었다고 기사는 말한다. 지난 2008년에는 열애설을 극구 부인하던 그들이 왜 이번 기사에선 열애설을 인정한 것일까. 신민섭 기자는 그것이 물증인 데이트 현장 사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김혜수와 유해진은 물증이 없는 지난 2008년의 열애설 기사는 부인할 수 있었지만 이번 열애설 기사에선 데이트 현장이 찍힌 사진 때문에 순순히 열애설을 인정한 것이라고 한다. 신민섭 기자는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바로 그 이중적 태도가 연예 언론의 밀착 취재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신민섭 기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연예인이라도 사생활이 보호되어야 하며 글이 기자 입장만 다뤘다는 것이 댓글의 주요 내용이다. 심지어 이런 글은 '3M흥업' 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짜증 섞인 댓글까지 보인다.

연예인은 사생활을 감추려 하고 연예 기자는 이를 밝히려 한다. 감추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 이 둘의 욕망은 과연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렸을 적 애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해가 지고 엄마들이 밥 먹어라 고함을 쳐도 아이들의 술래잡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연예인과 연예 기자의 술래잡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2009년 - 늦었지만 결산하자

세상에 이렇게 결산도 자동으로 해주는군요. 신기하기도 하여라. 뭐 그냥 보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2009년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올해의 추진력을 얻어 보고자 글로 남겨봅니다.

1. 포스트 : 6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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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 와우, 61개나 올렸군요. 6월에 블로그를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역시나 그 다음달인 7월 포스트 수가 15개로 가장 많군요. 꽤나 의욕에 찬 여름이었습니다~. 더위에 지친걸까요. 불타는 열정은 2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8월달 포스트 수가 8개로 곤두박질 칩니다. 8월 이후론 고만고만. 11월에는 4개~!! 뭘 하고 살았던 걸까요...OTL

2. 덧글 : 19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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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 7월 덧글 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역시나 의욕에 차 있다보니까 벨리를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댓글을 남긴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버겁더라구요. 글 쓸 시간도 없는데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다는게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초반에 글을 쓸 때는 같은 주제의 글들을 검색해 보곤 했었죠. 다른 사람들이 이미 쓴 내용이면 어쩌나, 내가 쓰는 게 혹시 틀린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이 많아서 최대한 여러 글을 읽어 본 후에 글을 시작하곤 했어요.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에이 아무렴 어때, 중복되도 괜찮어, 어차피 연습이잖아'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 트랙백 : 5개
 00000120200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 가끔가다 트랙백을 걸어주시는 분들도 계셨네요. 부끄러워서 제가 쓴 글을 다른 블로그에 트랙백으로 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 보다 한 백만배 정도 잘 쓰게 되면 모를까...

4. 핑백 : 2009년 한 해 동안 받은 핑백이 없습니다.

>> 흐음... 핑백은 또 뭔가요. 어려워요~ㅜ.ㅜ

5. 2008-2009 포스트 수 비교 (2008년 포스트 : 2개)
 0000000000090150809280408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 헛, 2008년은 블로그질은 하지 않았는데, 저...저.. 10월달의 2개는 뭘까요?? 아하~ 찾아보니, 살북 소개기사와 우에노 주리 관련 기사가 있었네요. 요때 무슨 이유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글 2개를 작성한 듯 합니다. 뜬금없는 글을 2개나 올리다니 사는 게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6. 내가 보낸 글 통계
 411560310 
  테마 태그 가든 보낸트랙백 보낸핑백 블로거뉴스  

>> 헐, 핑백은 뭔지도 모르는데 보낸 적이 있군요. 태그 156개. 태그 정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죠.

7. 내이글루 명예의 전당
>> 문고판으로 3권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왠지 작가가 된 기분~ㅋㅋ
가장 많이 벨리는 도서군요. "읽은 모든 책을 글로 쓰자~!!" 라는 각오를 다졌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만만한게 영화죠. 보는 데 2시간 밖에 안 걸리고 이것저것 이야기할 것도 많구요. 그에 비해 책은 더 어렵죠. 읽는 데도 오래걸리고 읽고 나서도 책 내용을 요약하기도 쉽지 않아요. 특히나 전문 내용을 다룬 책이라면 더더욱 어렵죠. 그럴땐 책 내용에 대해 쓰기 보단, 아 이런 책을 읽었도다~ 이런 식으로 허튼 소리만 늘어놓는 답니다.

가장 많이 읽힌 글을 '아바타'네요. 이건 뭐 순전히 영화 덕이죠~ㅋㅋ 요즘엔 이런 글을 자주 올리네요. 신문 기사를 링크시키고 기사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이 때는 김훈의 '공무도하가'를 읽고 있던 때라, 김훈 느낌이 나도록 드라이하게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생각은 머리에 머물뿐 손을 타고 키보드까지 전달되기 힘들죠ㅜ.ㅜ

가장 덧글을 많이 쓴 사람은 나스타님~!! 감사드려요~ㅋㅋ 근데 요즘은 나스타님도 꽤 게을러지셨어요. 예전엔 댓글도 많이 달아주셨는데 요즘은 하나 다나는 것도 힘겨워 보이시네요. 제 글에 힘이 달려서 그런걸까요. 좀더 좋은 글을 못 쓰더라도 좀더 많은 글을 쓰기 위해 2010년도 노력해야 겠네요~!!

평론가가 꼽은 2009 올해의 음반

연말이 되면 으레 한 해를 결산하는 방송이나 기사들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요즘은 티비를 보지 않지만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어김없이 저녁 시간대에 등장하곤 했던 '연기대상'이라던가 '연예대상'따위의 프로그램을 즐겨 챙겨보곤 했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여러 방송국의 시상식이 겹쳐서 방송되기 때문에 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쉴새 없이 연타해야 했던 고충도 기억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한 해를 결산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1년 동안 정들었고 이제 안타까운 이별을 앞둔 '한 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헤어질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마음이 약해 연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들 또한 세상엔 많다.

한겨레 신문에 평론가가 꼽은 올해의 음반에 관한 기사가 났다. 서정민 기자는 "다음달 창간 예정인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 20명한테서 ‘올해의 음반’을 7장씩 추천받아 정리해봤다." 고 말한다. 일반 대중들이 아닌 평론가들이 꼽은 올해의 음반은 무엇일까. 음악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음반 순위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많다.

[한겨레] 평론가가 꼽은 올해의 음반 ‘스왈로우-잇’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음반
1위 - 스왈로우 <잇>
2위 - 서울전자음악단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3위 - 이소라 7집, 국카스텐 <국카스텐>, 한음파<독감>
4위 - 황보령=스맥 소프트 <샤인스 인 더 다크>, 아폴로18 <더 블루 앨범>
5위 - 브라운아이드걸즈 <사운드 지>, 박지윤 <꽃, 다시 첫번째>,
        브로콜리 너 마저 <보편적인 노래>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신인
1위 - 아폴로18
2위 - 국카스텐
3위 - 투애니원(2NE1)
4위 - 박주원
5위 - 루네, 생각의 여름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음반 1위는 스왈로우의 <잇>이 차지했다. 음악 사이트 '멜론' 의 음반 소개에 따르면 '스왈로우'는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꼭 써야하는 말이 있다. "음... 천잰데...". 더구나 스왈로우의 두번째 앨범이었던 <Aresco> 는 2007년에도 대중음악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음... 천잰데...". 스왈로우의 음악은 예전 어느 소개 기사를 접하고 나서 몇번 찾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닥 감명깊이 와 닿지 않아서 곧 그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과연, 좋은 음악은 귀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기사를 읽고 한 가지 의외라고 느낀 부분은, 개인적으로 올해 음악계를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3표를 받았다고 한다. 기사를 정확히 인용하자면 "3표씩 얻어, 당당히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고 한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팬인 나로서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내맘대로의 순위를 정한다면 역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없이 산다'를 올해의 음반 1위로 올려놓고 싶다.

기사를 접하고 순위에 올려진 음반들을 찾아 듣고 있는데 역시나 일반 대중가요에 비해 첫 대면이 수월하지 않다. '이거 정말 좋은거 맞어' 라며 긴가민가하는 느낌. 소위 명반이라 불리는 음악들은 내게 거진 이런 식의 아리송한 첫느낌을 주곤했다. 대학교 때 동아리 선배들이 추천했던 명반들을 주워 들을 때에도 처음부터 확 와닿는 곡들은 드물었다. 이건 미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전설의 명작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눈만 껌뻑대는 난감함. 문화적 감수성이 전무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것만도 싶지가 않다.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명반을 듣는다는 것은 거리의 유행가를 듣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09년이 정말 며칠 남지 않은 지금,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명반'과 함께 올 한 해를 마무리해 보는 것도 연말을 알차게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노란 손톱

1.
하도 귤을 까 먹었더니 오른 쪽 엄지 손톱이 노랗게 변해 버렸다.

세상 모든 사람들도 나처럼
귤을 깔 때는 맨 처음
꼭지가 달린 부분의 반대편,
그러니까 움푹 들어 간 부분을
엄지 손톱으로 쿡,
누르는 걸까.

음푹 들어간 부분에 푹,
구멍이 생기면
벌어진 틈 사이로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가져가
바나나를 까듯 바깥 쪽으로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걸까.

하도 귤을 까 먹었더니 책상 위 접시에 귤 껍질이 수북히 쌓여 버렸다.

2.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가져가
책상 위 접시
귤 껍질을 하나 집어 들어 올리니
그 모양이 꼭 별 같다.

들어 올린 놈을 치내고
책상 위 접시
이번엔 좀 더 짙은 오랜지색의,
맛있어 보여 깠더니
입술이 쓰릴 만큼 시었던 고 녀석.
귤 껍질을 하나 집어 들어 올리니
그 모양이 꼭 불가사리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도 나처럼
귤을 깔 때는 온전히
귤 껍질이 한 덩어리로 모이도록
무심코 작은 조각 하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걸까.

3.
책상 위 접시
노란 귤 껍질이 수북히 쌓이면
하얀 눈도 덩달아
거리 위에 쌓일 것만 같아서
고개 돌려 창 밖을 바라보지만

창 밖에 하얀 눈 대신
거믄 어둠이 추위와 비벼져
가을비 처럼 스산하게
건너편 아파트 낡은 베란다를
적시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도 나처럼
엄지 손톱을 노랗게 물 들이고
책상 위 접시
수북히 쌓인 귤 껍질을 바라보며
겨울밤 소리없이 내리는,
노란 빛 가로등 방 안에 비치는
함박눈 그림자를 떠올리곤 하는 걸까.


신의 재림 '아바타' 영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신작 영화 '아바타'의 개봉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11일 금요일 영등포 CGV에서 '아바타'의 기자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를 보고 난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영화 미디어 사이트 '씨네21'에 '아바타'를 본 여러 기자와 평론가들의 100자평이 실렸다.

경천동지의 미래영화 <아바타> 최초 공개 -씨네21-

평소 침착하기로 이름난 '씨네21' 김도훈 기자는 기사의 제목에 '경천동지' 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네 글자를 과감히 박아 넣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새로운 이야기나 주제를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로 100자평을 시작했지만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하나의 세계" 라며 극장을 떠나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 만족할 것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심지어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은 제임스 카메론을 '블록버스터의 신' 이라는 자리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100자평 속에는 "혁명", "미래영화의 청사진", "멋진 신세계", "혁신", "기념비적" 따위의 소위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다분히 흥분해 콧구멍이 확장된 영화광들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라는 것이 현실과는 다른 가상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인데 이들 전문가들의 평은 마치 이전 영화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하나의 살아있는 신세계가 이 '아바타'라는 영화에 담겨 있다는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블록버스트의 신'이 만들었다는 영화 '아바타'. 앞으로 하루 뒤, 과연 국내 영화팬들은 신의 재림을 목도하게 될 것인가.    

모범시민이 아니잖아~ 영화

(주의: 이 글은 영화 '모범시민'의 내용공개로 떡칠되어 있습니다.)

모범시민이란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클라이드란 사내. 어느 날 괴한 두 명이 집에 침입하고 이들은 아내와 딸을 겁탈한 후 살해한다. 운좋게 클라이드는 살아남았고 범인 2명도 잡힌다. 하지만 범인들이 증거를 인멸했던 것일까 범인들의 살인죄를 인정할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현장에 있던 클라이드가 유일한 목격자이지만 결정적 살인장면을 보지 못하고 기절했기 때문에 그의 증언 역시 법적 증거로서의 효력이 없다.

이대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범인 둘 중 누구에게도 살인죄가 성립될 확률이 희박하다. 이 사건을 맡은 유망한 검사보 닉은 범인 한 명과 협상을 하기로 한다. 빌어먹을 범인과 무슨 협상이냐고? 쟤가 했다고 니가 불면 쟤한테 독박 씌우고 너는 감형해 주겠다는 달콤 쌉싸롬한 협상. 하지만 이를 어쩌랴. 검사 닉이 구제한 범인 녀석이 바로 자신의 아내와 딸을 겁탈하고 살해한 망나니라는 것을 알고 클라이드는 경악한다. 제발 협상을 하지 말라고 울부짖는 클라이드.

검사 닉은 어차피 협상을 하지 않으면 둘 중 아무도 살인죄를 받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니 한 놈에게라도 뒤집어 씌우는게 낫지 않냐고 항변한다. 그래, 완전히 허튼 소리는 아니잖아? 어차피 둘 다 빠져나갈 거라면 한 놈에 몰빵하는게 낫지 않냐 이거지. 하지만 눈 앞에서 그 망나니 놈이 자신의 아내와 딸을 추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오열해야 했던 클라이드에겐 씨도 안 먹힐 소리다. 협상은 성사되었고 재판이 끝난 후 운이 좋은 망나니 범인 녀석은 능글거리는 웃음 지으며 검사 닉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는 뜬근없이 10년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주인공들은 전혀 늙지 않았다. 하다 못해 머리 모양이라도 달라져야 하는 거 아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들은 10초 후가 무색할 정도로 이전 SCENE 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허나, 얼굴은 그대로지만 그들에게 어찌 10년이 짧은 세월이었겠는가.

검사 닉은 아내와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고 있고 그의 딸은 어느덧 10살의 꼬마 아가씨로 자랐다. 이 꼬마 아가씨의 키가 10년 전 사건 당시 클라이드 딸의 키하고 비슷한 것도 같다. 무언가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가? 그리고 클라이드. 생긴 것 답지 않은 천재적인 머리로 10년간의 치밀한 준비를 마치고 썪어빠진 사법체계를 응징하기 위해 우리의 히어로 클라이드가 등장했다. 그가 어떻게 허술한 사법체계를 조롱하고 괴멸시키는 모두들 기대하시라.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의 반응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은 대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었지만 끝부분이 좀 밋밋했다는 반응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클라이드는 시청건물의 회의실에 폭탄을 설치한다. 회의실에 모인 시청 고위직들을 모두 날려버릴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검사 닉에 의해 저지 당하고 만다. 바로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다. 클라이드는 자주 검사 닉을 앞에 두고 모두를 죽일거라고, 모든 걸 날려버릴 거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곤 했다. 이 가공할 천재 사내가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니 관객들은 모두 인류의 절반 정도가 몰살당하는 엄청난 테러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허지만 뻥쟁이 클라이드는 고작 시청 회의실 하나 폭파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불만점은 천재라는 설레발이 무색해질 정도로 클라이드의 원대한 계획의 비밀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망나니 범인 녀석을 처리한 클라이드는 순순히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히고 만다. 허나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살인이 그가 말한대로 이루어진다. 아뿔싸, 그는 천재가 아닌 초능력자였단 말인가. 순식간에 그는 신의 권좌에 오른다. 신은 거드름을 피우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모든 행동은 이미 예측되었다. 너희들의 생과 사는 나의 손가락 하나에 달려있다. 오, 신의 권능.

그렇다. 관객들은 모든게 가능하다 믿었을 것이다. 신의 하품에 의해 인류의 몰살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허나 그 눈부신 신의 권능은 너무도 허무하게 벗겨지고 만다. 클라이드가 초능력자가 아니라 덜떨어진 천재에 불과했음이 너무 쉽게 들어나고 만다. 눈 먼 복수심이 그 차갑던 이성을 너무 높은 온도로 데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신의 권능이 고작 부동산 기록이 담긴 이메일 한 통에 의해 무너져내릴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과연 신의 권좌는 모래로 만들어진 것이었던가.

클라이드는 대체 왜?

복수를 꿈꾼 클라이드. 헌데 그의 행동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그가 복수심에 눈이 뒤집히도록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가장 직접적인 사람을 꼽자면 그의 집에 침입한 두 범인이다. 그리고 그들은 클라이드에 의해 고통스런 최후를 맞이한다. 자, 이제 복수는 끊난걸까. 아니, 생각해 보니 한 사람이 더 남아있다. 검사인 주제에 망나니 녀석과 협상을 맺은 닉. 법원 앞에서 망나니 녀석과 악수를 나누었던 검사 닉. 그가 바로 처절한 복수의 다음 표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클라이드는 검사 닉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썩어빠진 사법체계에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검사 닉은 털 끝 하나 다치지 않는 대신 닉의 주변 동료들이 하나 둘 제거되기 시작한다. 뭐, 뭐야. 이거 좀 황당하지 않나. 왜 닉은 가만두고 애꿎은 주변인들만 죽여대고 있는건가. 클라이드와 닉의 대화에 다시 한 번 주목해 보자.

왜 범인과 협상을 했느냐고 다그치는 클라이드. 검사 닉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범인 두 놈 다 살인죄를 벗어났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걸 니가 참아낼 수 있었겠냐고 되묻는다.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했을 거고 그런데도 범인들이 살인죄를 받지 않았다면 그 결과를 어쩔 수 없지만 감내했을 거라고 클라이드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보라. 클라이드는 사법체계에 한계가 있지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로 미루어 그가 사법체계 전체가 아니라 범인과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일부 사법 조항과 그 조항을 적극 활용한 검사 닉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헌데 왜 클라이드는 닉에게 총구를 직접 겨누지 않고 사법체계와 공권력 그 자체를 적으로 돌린 것일까. 물론 극 중에는 협상을 맺은 것을 뼈저리도록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클라이드가 닉에게 말하는 대목이 있지만, 그가 닉에게 손 대지 않는 이유로는 그다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클라이드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를 꿈꾸었다면 그의 복수는 검사 닉을 똑바로 향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클라이드는 자신이 느낀 고통을 되갚으려는듯 두 범인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손을 쓴다. 이처럼 그는 닉에게도 자신이 받은 고통을 똑같이 되돌려줬어야 했다.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 검사 닉의 집에 두 명의 괴한을 침입시켜 닉의 아내와 딸을 겁탈한 후 죽이고, 결정적 증거를 인멸시킨 후 경찰에 잡히도록 해야했다. 그리고는 이 사건을 두고 검사 닉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좀더 솔직한 복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태원 살인사건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두 명의 용의자가 있다. 두 명의 용의자 중 한 명이 살인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허나 둘 중 누가 범인지를 증명할 수가 없다.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은 이 상황 자체의 아이러니를 이야기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다.

좁다란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체포된 두 명의 용의자. 결정적 증거의 부족. 두 용의자는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우겨댄다. 과연 둘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둘 중 하나가 범인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지만 누가 범인인지를 집어낼 수가 없다. 아, 가슴이 미어터질듯한 답답함. 용의자들을 쥐어 패서라도 실토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둘에게 사이좋게 형량의 1/2씩을 선고할 것인가.

모범시민도 이 경우와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망나니를 살인자라고 말하지만 영화에선 망나니가 클라이드의 아내와 딸의 숨통을 끊는 결정적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정황으로 봐서 망나니가 범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클라이드는 온 몸이 꽁꽁 묶여 바닥에 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었고 그 마저도 아내와 딸이 죽기 전에 기절해 버렸다. 관객들은 클라이드와 함께 사건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망나니가 범인이라는 클라이드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극 중 클라이드 이외의 인물들은 사건현장의 물증과 범인, 목격자의 진술 만으로 사건에 대해 판단해야만 한다. 만약 관객에게 사건 현장의 SCENE 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때에도 관객들은 클라이드의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그 때에도 관객들은 클라이드의 분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더욱 신중해야만 한다.

신중치 못했던 클라이드. 그래서 그렇게 쉽게 꼬리를 밟히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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